
로슈(Roche)가 개발 중인 브루톤 티로신 키나아제(BTK) 억제제 페네브루티닙(fenebrutinib)이 재발성 다발성 경화증(RMS)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두 번째 임상 3상 시험에서 일차 평가변수를 충족했다.
이번 연구에서 페네브루티닙은 사노피(Sanofi)의 테리플루노마이드(teriflunomide, 상품명 오바지오) 대비 연간 재발률(ARR)을 51%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발표된 첫 번째 임상 3상 결과인 59% 감소에 이어 다시 한번 대조군 대비 우월성을 입증한 셈이다. 뇌 병변 감소 측면에서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치를 기록하며 모든 진행 지표가 페네브루티닙에 유리한 방향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고무적인 효능 데이터와 별개로 안전성 데이터는 향후 허가 과정에서 상당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번 임상에서 페네브루티닙 투여군 중 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반면 대조군인 테리플루노마이드 투여군에서는 1명의 사망자만 보고됐다. 로슈 측은 사망 원인이 다양하고 투약 시점도 제각각이라고 설명하며 데이터 분석에 착수했으나, 규제 기관의 엄격한 검토가 예상된다. 특히 BTK 억제제 계열 약물은 최근 간 독성 문제로 인해 허가 문턱이 높아진 상태다.
간 손상을 예측하는 지표인 하이의 법칙(Hy's Law) 사례도 관찰됐다. 하이의 법칙은 임상시험에서 약물 투여 후 뚜렷한 다른 원인 없이 혈중 아미노전달효소(AST·ALT)가 정상 상한치의 3배 이상 상승하고 총 빌리루빈이 2배 이상 증가하는 사례가 나타날 경우, 중증 약물 유발 간 손상으로 진행할 위험이 높다는 경험적 기준을 의미한다.
페네브루티닙 투여군과 테리플루노마이드 투여군에서 각각 1건씩 발생했으며, 로슈는 해당 사례가 무증상이었고 투약 중단 후 회복되었다고 밝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임상 데이터베이스에서 단 한 건의 하이의 법칙 사례만 발견되어도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간주하며, 두 건 이상일 경우 광범위한 인구 투여 시 심각한 약물 유발 간 손상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사노피의 또 다른 BTK 억제제인 톨레브루티닙(tolebrutinib)은 간 독성 위험으로 인해 지난해 말 FDA로부터 승인이 거절된 바 있다.
한편 로슈는 이번 FENhance 1 결과를 포함한 전체 3상 프로그램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요 규제 당국에 허가 신청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페네브루티닙은 재발성 다발성 경화증(RMS)뿐 아니라 일차 진행성 다발성 경화증(PPMS)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3상 시험(FENtrepid)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확보한 바 있어, 회사는 이를 통해 기존 치료 옵션과 차별화된 기전의 치료제로 자리매김한다는 전략이다.
페네브루티닙은 스위스 제약사 로슈가 개발 중인 경구용 브루톤 티로신 키나아제(BTK) 저해제로, B세포 및 일부 선천면역세포에서 신호 전달에 관여하는 BTK를 선택적으로 억제해 과도한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기전의 약물이다. 기존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 가운데 항CD20 계열처럼 B세포를 직접 고갈하는 방식과 달리, BTK 저해제는 세포를 제거하지 않고 기능을 조절(modulation)하는 접근법을 취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회사 측에 따르면 페네브루티닙은 공유결합 방식이 아닌 비공유결합 방식으로 BTK에 결합하도록 설계돼 선택성을 높이고 오프타깃(off-target) 영향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BTK 계열 전반에 대해 간 독성 우려가 제기돼 온 만큼, 페네브루티닙 역시 대규모 임상에서 축적되는 안전성 데이터가 최종 허가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