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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 온 최혜국 대우(Most Favored Nation, MFN) 약가 정책이 대형 제약사 전체의 동참으로 완성됐다. 백악관은 4월 23일 리제네론(Regeneron)과 17번째이자 마지막 MFN 합의를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7월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한 17개 대형 제약사 전원이 약가 인하 정책에 합의하게 됐으며, 백악관에 따르면 이번 합의 기업들은 미국 브랜드 의약품 시장의 86%를 차지한다.
합의 기업 명단에는 화이자(Pfizer),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EMD 세로노(EMD Serono), 일라이 릴리(Eli Lilly),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 암젠(Amgen),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ristol Myers Squibb), 베링거인겔하임(Boehringer Ingelheim), 제넨텍(Genentech),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s), GSK, 머크(Merck), 노바티스(Novartis), 사노피(Sanofi),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 애브비(AbbVie), 그리고 리제네론이 포함된다. 이 과정은 2025년 5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 "미국 환자에게 최혜국 처방의약품 가격 제공(Delivering Most-Favored-Nation Prescription Drug Pricing to American Patients)"으로 시작됐으며, 같은 해 7월 17개 대형 제약사 최고경영자들에게 미국 가격을 국제 최저 수준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하면서 본격화됐다.
MFN 합의의 핵심 구조는 각사별 조건에 차이가 있으나 공통된 틀을 따른다. 합의 기업들은 기존 특정 제품에 대해 메디케이드 최적 가격 수준의 MFN 가격을 적용하고, 신규 출시 제품에도 출시 시점부터 MFN 가격을 적용하며, 정부 직접 판매 플랫폼 TrumpRx.gov에 해당 제품을 등재하는 조건에 동의했다. 그 대가로 합의 기업들은 행정부의 관세 위협으로부터 3년간 면제 권한을 부여받는다.
마지막 합의 기업인 리제네론은 콜레스테롤 저하제 프랄루엔트(Praluent)를 기존 537달러에서 225달러로 인하해 TrumpRx 플랫폼을 통해 판매하기로 했다. 또한 리제네론은 이날 선천성 청각 장애 유전자 치료제 오타르메니(Otarmeni)의 FDA 승인과 함께 해당 치료제를 미국 내 적격 환자에게 무상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2029년까지 미국 내 연구개발 및 제조에 270억 달러를 투자해 국내 바이오 의약품 생산 능력을 두 배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약가 합의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하버드 브리검 앤 위민스 병원의 보건정책 연구원 벤자민 로마(Benjamin Rome) 박사는 "이번 합의들은 변혁적인 것처럼 발표되고 있지만, 사실 미국 내 처방약 고가의 근본 원인을 비껴간 채 주변부만 다듬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합의는 기업들이 기존 제품의 목록 가격을 인하하거나 동결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메디케이드 수혜자와 TrumpRx 직접 구매자를 제외한 민간 보험 또는 메디케어 가입자에게는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
더 큰 구조적 우려는 중소형 바이오텍으로 시선이 쏠린다. 분석가들은 "현재의 정책 역학이 대형 제약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형 제약사는 가격 인하 충격을 흡수할 자본력이 있지만, 바이오텍에게는 단일 제품 출시가 기업의 존폐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중소 바이오텍은 이번 17개사 서한 발송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CMS가 추진 중인 메디케어 의무화 모델인 GLOBE(파트 B)와 GUARD(파트 D)가 최종 확정될 경우 그 영향권에 들어올 수 있다.
한편 MFN 합의가 글로벌 출시 전략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제약사는 유럽에서 낮은 가격이 책정될 경우 이것이 미국 MFN 기준가에 반영될 것을 우려해 유럽 출시 자체를 재고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 간에 사실상 두 가지 치료 기준이 병존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