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급 의료 현장에서 소아 경련 환자 처치에 필수적인 아티반(Ativan)의 공급 중단이 현실화되면서 필수의약품 관리 체계의 구조적 결함이 드러나고 있다.
국내에서 해당 약물을 단독 생산하는 일동제약은 지난해 말 노후 설비 문제와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아티반 생산 중단을 보고했다. 아티반의 성분명인 로라제팜(Lorazepam)은 경련 조절뿐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와 신경과 환자의 진정에도 널리 쓰이는 약물이다. 특히 응급실에서 소아 경련 환자에게 가장 먼저 투여되는 1차 약제로, 대체 약물 사용 시 인공호흡기 준비 등 추가적인 의료 자원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로라제팜은 간 대사를 거의 거치지 않는 독특한 약동학적 특성을 지닌다. 이 때문에 간 기능이 저하된 환자나 다약제 병용 환자에게는 유사 계열 벤조디아제핀 약물로의 단순 대체가 임상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조현병 등 급성 정신병적 증상으로 행동 조절이 어려운 환자를 주로 다루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이 약물의 공백을 특히 우려하는 이유다.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은 "아티반은 약동학적으로도 대체가 어려운 약"이라며, "이 약이 없으면 더 강한 2차 약제를 사용하고 인공호흡기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까지 간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는 비현실적인 약가 정책이 지목된다. 아티반 2mg 기준 약가는 782원 수준으로, 생산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에 봉착해 있다. 정부가 시장 철수를 막기 위해 해당 약물을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해 관리해 왔으나, 원가 보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민간 기업의 생산 유인을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이 의원은 "2mg 기준 약가가 782원 수준으로, 껌 한 통이나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해 생산을 유지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직격하며, 이 문제가 이미 1년 전부터 예고된 구조적 문제임을 지적했다.
의료계는 정부의 보건 의료 정책이 혁신 신약의 가치 보상에만 집중된 사이, 오랜 기간 사용되어 온 필수 저가 의약품의 공급망은 방치되었다고 분석한다. 과거 인조혈관 공급 중단 사태나 산모 필수약인 옥시토신(Oxytocin) 품절 사례—40% 인상 이후에도 한 병에 273원에 불과한 현실—에서 보듯, 공공재 성격이 강한 필수의약품을 시장 논리에만 맡겨두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의원은 "필수적이지 않은 영역은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필수적이지만 개인이 대비하기 어려운 영역은 국가가 정책으로 지켜줘야 한다"며 재정 사용의 우선순위 재검토를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퇴장방지의약품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원가 기반의 보상 체계 마련, 장기 공급 계약 체결, 공공 비축 시스템 도입 등 공급 안정화를 위한 정책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가들은 "퇴장방지의약품 지정만으로는 한계가 확인된 만큼, 실제 생산이 지속 가능하도록 구조적 보상 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필수의약품 공급을 시장 논리에만 맡겨온 구조가 결국 환자 안전 리스크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경고는, 이번 아티반 사태를 계기로 더욱 무겁게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