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파마뉴스 | 서윤열 의약 전문 기자] 영국 특허법원이 MSD(Merck & Co.)와 할로자임(Halozyme Therapeutics) 간 특허 분쟁에서 할로자임의 침해 주장이 충분한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하며 이례적으로 인뎀니티 코스트(Indemnity Costs)를 명령했다. 최근 미국 특허심판원(PTAB)의 연이은 특허 무효 결정에 이어 영국에서도 할로자임의 특허 집행 논리가 흔들리면서, 키트루다 피하주사(SC) 제형 개발을 추진 중인 MSD와 플랫폼 제공사 알테오젠(Alteogen)에 유리한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고등법원 특허법원(Patents Court)의 해컨(Hacon) 판사는 지난 21일 공개된 판결문에서 할로자임이 제기한 EP 2 797 622(EP622) 특허 침해 반소와 관련해 “투기적(speculative), 취약한(weak) 또는 빈약한(thin) 주장에 불과했다”고 판단했다.
법원 “침해 주장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 없었다”
이번 판결은 특허 유효성 자체보다 소송 비용 부담을 결정하는 비용 심리(Costs Hearing)에서 나왔다.
앞서 MSD는 할로자임이 보유한 인간 히알루로니다제(PH20) 변이체 관련 유럽 특허 EP622의 영국 지정권에 대해 무효를 주장했고, 할로자임은 이에 맞서 MSD 제품이 해당 특허를 침해한다고 반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후 할로자임은 EP622 특허 취소에 동의하면서 침해 주장 역시 사실상 철회했다.
쟁점은 할로자임이 침해 반소를 제기할 당시 실제로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갖고 있었는지 여부였다.
법원은 할로자임이 독일 가처분 소송에서 활용한 실험 결과를 근거로 침해 가능성을 주장했지만, 정작 영국 법원에는 해당 실험 자료 전체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영국 소송 과정에서 별도로 진행한 실험 결과 역시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해컨 판사는 판결문에서 “할로자임의 선의의 침해 믿음(bona fide belief)을 뒷받침할 자료가 사실상 법원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험자료 제출 직전 특허 포기
판결문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특허 포기 시점이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할로자임은 침해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영국 내 실험 결과 제출 기한을 앞둔 시점인 올해 3월 말 EP622 특허 취소에 동의했다.
MSD 측은 할로자임이 실험 결과 공개를 앞두고 특허를 포기한 것은 결과가 침해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를 단정하지는 않았지만, 할로자임이 영국 실험 결과가 자신의 침해 논리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한 판결문 후반부에서는 할로자임이 독일 실험을 수행한 연구자나 관련 증인을 법정에 세워 침해 주장 근거를 설명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인뎀니티 코스트 명령…일반 비용보다 무거운 부담
영국 특허소송에서 인뎀니티 코스트는 일반적인 패소 비용보다 높은 수준의 비용 배상을 의미한다. 통상 법원이 상대방 주장이나 소송 수행 방식에 특별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때만 인정된다.
법원은 할로자임이 침해 반소를 제기할 당시 해당 주장의 근거가 충분하지 않았음을 인식했거나 최소한 인식했어야 했다고 판단하며 인뎀니티 코스트 지급을 명령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 자체보다 법원이 침해 주장 근거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에 더 주목하고 있다.
PTAB 무효 결정과 맞물려 압박 커져
이번 판결은 최근 미국에서 이어진 할로자임의 특허 패배와도 맞물린다. 앞서 미국 PTAB는 할로자임의 MDASE 플랫폼 관련 특허인 미국 특허번호 11,952,600호, 12,152,262호, 12,018,298호에 대해 서면 기재 요건(written description) 및 실시 가능 요건(enablement)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무효 결정을 내렸다.
또한 할로자임이 알테오젠의 히알루로니다제 제조방법 특허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무효심판(IPR) 개시 요청 역시 기각된 상태다.
키트루다 SC 분쟁에 미칠 영향은
이번 영국 판결이 미국 뉴저지 연방법원에서 진행 중인 MSD와 할로자임 간 소송에 직접적인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할로자임의 특허 및 침해 주장에 대한 신뢰성이 잇따라 도전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MSD와 알테오젠 측에는 우호적인 판결로 평가된다.
특히 MSD가 알테오젠의 베라히알루로니다제 알파(berahyaluronidase alfa, ALT-B4)를 적용해 개발 중인 키트루다 SC 제형 ’키트루다 큐렉스(KEYTRUDA QLEx)’의 상업화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특허 리스크를 일부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