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s)가 차세대 B형 간염(HBV) 항바이러스제 후보물질인 ABI-4334의 권리를 어셈블리 바이오사이언스(Assembly Biosciences)에 반환했다. 이번 결정으로 어셈블리 바이오사이언스는 2024년 임상 1b상 단계에 진입한 고효능 캡시드 조립 조절제(Capsid Assembly Modulator, CAM) 후보물질인 ABI-4334에 대한 독점적 통제권을 다시 확보하게 됐다.
ABI-4334는 기존 B형 간염 치료제와 차별화된 이중 작용 기전을 갖춘 차세대 직접 작용 항바이러스제(DAA)다. CAM 계열 약물은 HBV DNA 복제 억제와 바이러스 저장소 역할을 하는 공유결합 폐쇄 원형 DNA(cccDNA) 신생 형성 차단이라는 두 가지 기전을 동시에 갖는다. cccDNA는 현행 치료제로는 제거가 어려운 바이러스 잔존의 핵심 원인으로, 이를 표적으로 하는 약물은 '기능적 완치(functional cure)'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임상 성과도 고무적이었다. 150mg 및 400mg 두 코호트 모두에서 HBV DNA가 각각 평균 2.9 및 3.2 log10 IU/mL 감소했으며, 1일 1회 경구 투여를 뒷받침하는 반감기와 함께 우호적인 안전성 프로파일이 확인됐다. 특히 150mg 용량에서 바이러스 복제 억제 기전이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한 것으로 해석돼, 400mg의 추가적 노출이 cccDNA 억제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전략적 유연성도 확인됐다.
전 세계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는 약 20억 명으로, 만성 B형 간염을 앓고 있는 환자는 약 2억 6,000만 명에 달한다. 항바이러스제를 포함한 만성 B형 간염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30억 6,000만 달러로 추정되며, 완치제가 등장할 경우 시장 규모가 대폭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표준 치료제인 테노포비르(tenofovir), 엔테카비르(entecavir) 등의 뉴클레오사이드 유사체는 장기 복용 시 내성 문제와 함께 복용 중단 후 바이러스 재활성화라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러한 미충족 의료 수요를 공략하기 위해 글로벌 제약사들의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GSK의 베피로비르센(bepirovirsen)은 임상 2b상에서 약 10%의 환자에서 완치 효과를 나타냈으며, 현재 임상 3상이 진행 중이다. 로슈, 얀센 등도 각자의 기전을 앞세운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어 차세대 B형 간염 치료제 시장의 선점 경쟁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양사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2023년 10월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어셈블리 바이오사이언스의 현재 및 미래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옵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선급금 1억 달러를 지불하며 체결됐다. 12년 장기 계약의 일환으로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지난해 12월 재발성 생식기 대상포진 치료제 후보물질 2종을 3,500만 달러에 라이선스 도입한 바 있다. 당시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바이러스학 치료 영역 책임자인 자레드 베이튼(Jared Baeten) 박사는 "심각한 바이러스 감염 환자의 삶을 개선하는 혁신적인 항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을 핵심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HBV 파이프라인인 ABI-4334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권리 확보에 나서지 않았다. 어셈블리 바이오사이언스의 2025년 회계연도 실적 발표 내용에 따르면,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해당 후보물질에 대한 옵션 행사나 연기 권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어셈블리 바이오사이언스는 ABI-4334의 단독 권리를 회수했으며, 프로그램 개발을 지속하기 위해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 위한 구조적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