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한양행의 원료의약품(API) 생산 자회사 유한화학이 글로벌 빅파마 길리어드사이언스(Gilead Sciences)와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고활성 원료의약품(HPAPI) 시장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유한화학은 20일 공시를 통해 길리어드사이언스와 2102억 원 규모의 API 공급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는 유한화학 최근 매출액의 9.61%에 해당하는 규모로, 계약 기간은 2027년 12월 31일까지다.
이번 수주는 유한화학이 축적해온 HPAPI 생산 역량과 글로벌 규제당국 대응 경험이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HPAPI는 극미량으로도 강력한 약효를 발휘하는 물질로, 작업자 안전 관리와 교차오염 방지를 위한 고도의 밀폐형 설비가 필수적이다. 음압 유지 시스템과 완전 밀폐형 아이솔레이터 등 설비 투자 부담과 운영 난이도가 높아 일반 API 대비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업계 관계자는 "HPAPI는 단순 설비 구축을 넘어 실제 상업 생산 단계에서의 규제 대응 노하우가 시장 진입의 핵심 변수"라고 설명했다.
유한화학은 2000년대 초반부터 선진 시장의 품질 관리 기준을 충족해왔다. 2002년 간염 치료제 리바비린(Ribavirin) 제조시설의 미국 FDA cGMP 실사 통과를 기점으로, 항바이러스제 전용 생산 라인 증설과 미국 FDA 및 일본 PMDA 실사를 반복적으로 완수하며 트랙레코드를 쌓았다. 상위 제약사 출신 GMP 전문가는 "국내 GMP 수준이 낮았던 과거부터 FDA 실사를 지속 통과하며 신뢰를 쌓은 점이 글로벌 빅파마와의 연속 수주를 가능케 한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길리어드사이언스와의 반복적인 수주는 실적 지표 개선으로 직결되고 있다. 2024년 1077억 원 규모의 HIV 치료제 API 공급을 시작으로 연이은 대형 계약이 성사되면서 유한화학의 매출은 2024년 2123억 원에서 2025년 2897억 원으로 약 36% 성장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20억 원에서 229억 원으로 90% 이상 급증했으며, 영업이익률 또한 5.7%에서 7.9%로 상승하며 수익 구조가 안정화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API 공급망의 특성상 한번 검증된 파트너를 교체하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한다. HPAPI와 같은 고난도 공정은 공급사 변경 시 밸리데이션 재실시와 규제당국 실사 등 리스크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고활성 API 업계 관계자는 "공급망 안정성이 중요한 빅파마 입장에서는 검증된 생산 파트너를 선호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공급사의 가격 협상력 제고와 마진 개선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유한화학의 성장은 모회사인 유한양행의 해외사업부 실적 확대와도 궤를 같이한다. 유한양행 해외사업부 매출은 2023년 2411억 원에서 2025년 3865억 원 규모로 가파르게 상승하며 전사 매출 비중을 높이고 있다. 유한화학은 최근 화성 공장 증설에 이어 HC동 신설을 추진하며 생산능력을 지속 확대하고 있어, 향후 글로벌 빅파마 대상 추가 수주 및 중장기 실적 성장의 선순환 구조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