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파마뉴스 | 서윤열 의약 전문 기자] 성인 독감 환자 10명 중 8명 가까이가 소화기계용 약제(Gastrointestinal Agents)를 처방받는 등 의료 현장의 관행적인 약물 사용이 고착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23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독감(인플루엔자)으로 진단받은 18세 이상 성인 환자 140만 1178건을 분석한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감 진료 시 소화기계용 약제 처방률은 평균 77.2%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항생제 처방률인 27.7%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특히 합병증이 없는 저위험군 환자에게도 위장약이 사실상의 기본 처방처럼 포함되고 있어, 독감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낮은 약제의 오남용 우려가 제기된다.
진료과목별로는 이비인후과의 소화기계용 약제 처방률이 84.6%로 가장 높았으며, 내과와 가정의학과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소아청소년과는 62.9%로 타 과목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보였다. 항생제 처방률의 경우 내과가 19.0%로 가장 낮았고, 소아청소년과가 37.5%, 이비인후과가 32.4% 순으로 나타나 진료 과목에 따른 처방 행태의 뚜렷한 격차를 드러냈다.
의료진의 연령대에 따라서도 처방 경향이 갈렸다. 45세 미만 의사의 소화기계용 약제 처방률은 83.9%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던 반면, 항생제 처방률은 23.3%로 가장 낮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65세 이상 의사는 항생제 처방률이 33.2%에 달해 고연령층 의료진일수록 항생제를 더 빈번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처방 양상이 환자의 요구를 반영하거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방어적 진료의 결과일 수 있다고 분석하면서도, 의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 진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영민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합병증이 없는 단순 독감 단계에서의 선제적 항생제 처방이 전체 치료기간을 단축하는 데 큰 실익이 없다"며 "환자 상태에 따른 정교한 적정 진료와 함께 약물 오남용을 줄이기 위한 의료계와 국민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번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소화기계용 약제의 관행적 사용에 대한 제도적 개입을 시사했다. 공단 관계자는 "합병증 없는 인플루엔자에 대한 항생제 치료와 관행적인 소화기계용 약제 처방에 대해서는 급여기준 정비 등이 필요하다"며 "국민들이 불필요한 약물 복용으로 인한 건강상 문제를 겪지 않도록 하는 것도 보험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