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넥신이 미국 아이코 메디컬 시스템즈(Ichor Medical Systems)와의 국제 법적 분쟁에서 승소하며 장기간 이어온 경영 불확실성을 완전히 해소했다.
제넥신은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판정부가 아이코 메디컬 시스템즈가 제기한 약 2000억 원 규모의 중재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고 밝혔다. 중재판정부는 제넥신의 계약 이행에 정당성이 있다고 최종 판단했으며, 제넥신이 지출한 소송비용 전액을 아이코 메디컬 시스템즈가 부담하도록 결정했다.
이번 분쟁은 2016년 양사가 체결한 자궁경부암 치료용 DNA 백신 임상용 전기천공기 기기 사용 계약에서 비롯됐다. 제넥신은 자궁경부암 DNA 치료 백신 후보물질 'GX-188E'의 임상에 아이코의 전기천공 장치 '트라이그리드(TriGrid)'를 활용해왔으며, 양사 협업은 GX-188E의 전임상부터 임상 1b/2상까지 이어졌다. 트라이그리드는 인체에 대한 전기천공 매개 핵산 투여를 위한 자동화 장치로, DNA 백신이 세포 내 작용 부위로 침투하는 효율을 수십 배 이상 높이는 기술이다.
분쟁의 직접적 배경에는 제넥신의 GX-188E 개발 중단 결정이 있다. 제넥신의 홍성준 경영 총괄 대표는 "임상 2상까지 수치적으로는 잘 완료됐는데 시기를 놓쳐서 경제성 측면에서 의문이 생겼다"고 밝힌 바 있으며, GX-188E의 자궁경부암 치료제 개발은 2023년 8월을 기점으로 사실상 중단됐다. 제넥신이 GX-188E 개발을 접으면서 트라이그리드 기기 사용 필요성도 자연히 소멸됐고, 이를 계약 위반으로 간주한 아이코 메디컬 시스템즈가 2024년 5월 ICC에 중재를 제기하면서 분쟁이 본격화됐다. 중재판정부는 그러나 제넥신의 개발 중단 결정이 계약상 권리 범위 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단심제로 운영되는 ICC 중재의 특성상 이번 판정으로 모든 법률 리스크가 종결됐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이번 판정은 단순한 소송 종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000억 원에 달하는 잠재 배상 리스크는 제넥신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증폭시켜 왔다. 제넥신은 지난해 매출 40억 원대를 기록하면서도 영업손실이 300억 원대에 달했으며, 전환사채 발행과 차입금 증가로 600억 원 이상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구조적 재무 압박 속에 놓여 있었다. 2000억 원 규모 소송 리스크의 완전한 소멸은 투자자 신뢰 회복과 추가 자금 조달 여건 개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제넥신 관계자는 "이번 판정은 제넥신의 계약상 권리와 사업 수행의 정당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라며 "장기간 지속된 분쟁이 해소됨에 따라 핵심 파이프라인 개발과 글로벌 사업 확대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법적 걸림돌을 제거한 제넥신은 차세대 TPD(표적 단백질 분해) 플랫폼 기반 파이프라인인 GX-BP1의 글로벌 사업화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GX-BP1은 2024년 이피디바이오테라퓨틱스 흡수합병 이후 본격 개발된 첫 바이오프로탁 파이프라인으로, 지난해 동물실험 완료에 이어 올 1분기 GLP 독성시험도 마무리됐다. 제넥신은 현재 IND 패키지 구축을 기반으로 글로벌 제약사들과 라이선스 아웃(L/O) 논의를 본격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