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Unsplash, Pexels금융감독원이 제약바이오 산업의 공시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해 공시 체계 전반을 손질한다. 이번 개편은 단순한 제도 보완이 아닌, 반복적으로 누적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당국의 본격적인 개입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금융감독원은 10일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개선을 위한 TF를 발족하고, 전문 용어와 복잡한 구조로 인해 투자자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기존 공시 관행을 전면 개편한다고 밝혔다. 코스닥 시장 내 시가총액 비중이 30%에 육박하고 IPO 시장에서도 절반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의 위상에 맞춰 공시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상장 단계에서의 정보 투명성 확보다. 금융감독원은 증권신고서 작성 시 공모가 산정의 토대가 되는 주요 가정과 추정치에 대한 근거를 명확히 기재하도록 요구할 방침이다. 특히 특정 전제가 변경될 경우 미래 매출에 미치는 영향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유도해 형식적인 수치 나열에서 벗어난 실질적인 투자 정보를 제공하도록 한다.
상장 이후의 정기 공시 체계도 파이프라인 중심으로 재편된다. 기존의 단순한 임상 단계 나열 방식에서 벗어나 각 파이프라인별 성공 가능성과 잠재적 리스크, 향후 일정 등을 체계적으로 포함하는 구조로 바뀐다. 이는 미래 연구개발 성과에 기업가치가 좌우되는 업종 특성을 고려해 투자자가 파이프라인의 전체 흐름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또한 언론보도와 공시 간의 괴리 현상을 차단하기 위한 정합성 확보 방안도 마련된다. 보도자료를 통해 과도한 기대감을 부풀리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금융위원회 및 한국거래소와 협력하여 외부 공개 정보의 일관성을 검증할 계획이다. 이번 TF에는 학계와 임상시험 전문가,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참여하며 약 3개월간의 의견 수렴을 거쳐 올해 상반기 중 최종 공시 가이드를 완성할 예정이다.
이번 TF 발족은 삼천당제약 공시 논란이 업계 전반의 화두로 번진 시점과 맞닿아 있다. 삼천당제약은 지난 2월 유럽 제약사와의 먹는 비만약 제네릭 독점 판매 계약을 보도자료로만 발표하고 정식 공시는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31일 삼천당제약에 대해 '영업실적 등에 대한 전망 또는 예측과 관련한 공정 공시 미이행'을 이유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예고했으며, 총 5조3000억원 규모로 공표된 계약의 실질적 가치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주가는 열흘 사이 반토막이 났다.
이 사태는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보도자료를 통해 투자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를 공시와 서로 다른 채널로 나눠 전달하는 관행이 업계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특히 이번 논란은 규제 사각지대를 겨냥한 정보 비대칭 전략이 투자자 피해와 직결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 사례로 평가된다.
이 같은 문제의 구조적 원인은 업종 고유의 정보 비대칭성에 있다. 제약바이오 기업은 현재 매출이나 이익보다 연구개발 성과와 사업화 가능성에 따라 기업가치가 결정되는 구조를 갖고 있어 투자자가 관련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투자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임상시험 종료 후 최종 신약 승인까지 도달할 확률은 통계적으로 약 10% 수준에 불과하고, 기술수출 계약금 역시 임상시험 및 품목허가 통과 시 단계별로 수취하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이를 확정 금액으로 오인하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
당국이 2020년 코스닥 제약바이오 기업 대상 공시 투명성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음에도 이번에 전면 재개편에 나선 것은, 공식 공시 외 채널까지 포괄하는 보다 실효성 있는 규율 체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규제의 외연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가 이번 TF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