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가 지난 4월 29일 대표이사 변경을 기점으로 창업 20년 만의 리더십 전환에 나섰다. 2006년 창업 이후 회사를 이끌어온 김용주 대표이사는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공동창업자인 박세진 사장이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지난해 오리온그룹에 편입된 이후 연구개발 중심 바이오텍에서 그룹 내 바이오 사업의 핵심 축으로 역할이 커지는 시점에 이뤄진 인사다.
회장 김용주, 그는 누구인가

김용주 회장은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유기화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정통 연구자 출신이다. LG화학 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LG화학 기술연구원 연구소장, LG생명과학 신약연구소장을 지내며 국내 신약 개발의 1세대를 이끌었다. 2006년 5월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현재의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를 창업한 뒤 약 20년간 회사를 이끌어왔다. LG화학과 LG생명과학에서 쌓은 의약화학 기반 신약개발 경험은 이후 리가켐바이오가 ADC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이번 인사 이후 김 회장은 경영 일선보다 미래 성장동력 발굴과 오리온그룹 바이오 사업 자문 역할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오리온그룹 편입 이후 리가켐바이오의 역할이 단일 바이오텍을 넘어 그룹 바이오 사업의 한 축으로 확대된 만큼, 김 회장의 기술적 경험과 신약개발 네트워크가 그룹 차원의 방향 설정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대표 박세진, 그는 누구인가

신임 대표로 선임된 박세진 대표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경영·재무 전문가다. 1987년 LG화학 기술연구원에 입사해 기획, 인사, 전략기획, 사업부 관리 업무를 거쳤으며, 미국 샌디에이고의 LG BMI 관리 업무도 맡았다. 2006년 6월 LG화학을 떠난 뒤 바로 다음 달 리가켐바이오에 합류해 지금까지 사장으로 재직해 왔다. 김 회장이 대기업 신약개발 조직에서 연구개발 경험을 쌓은 인물이라면, 박 대표는 같은 연구조직 안에서 기획과 운영, 전략 업무를 맡아온 경영 인력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이력은 창업 초기부터 맞물려 있었다.
박 대표는 리가켐바이오 창업 초기부터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겸임하며 회사의 재무와 운영을 맡아온 인물이다. 김 회장이 기술과 연구개발의 얼굴이었다면, 박 대표는 회사 안쪽에서 자금 조달, 조직 운영, 사업 관리 등 경영 기반을 다져온 공동창업자에 가깝다. 특히 ADC 기술이 임상 개발, 기술이전, 자본 배분, 글로벌 협상으로 이어져야 하는 단계에 들어선 만큼, 재무와 운영을 이해하는 박 대표의 역할은 이전보다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연구개발(R&D) 부문의 전문성 강화도 이번 인사의 핵심 축이다.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보스턴 임상 법인장을 겸직 중인 채제욱 수석부사장이 R&D 전체를 총괄하게 됨으로써 기술 개발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특히 신진 인재인 옥찬영 중개연구(TR) 센터장의 상무 승진은 리가켐바이오의 미래 방향성을 보여준다. 서울대 종양내과 교수와 의료 AI 기업 루닛의 최고의학책임자(CMO)를 지낸 옥 상무는 임상 경험에 AI 기술을 접목해 신약 개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중개연구 전문가로, 향후 글로벌 제약사와의 파트너십 확대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리가켐바이오의 이번 리더십 개편을 연구자 중심 벤처에서 글로벌 사업화 단계의 플랫폼 기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항체-약물 접합체(ADC)가 글로벌 제약 시장의 핵심 기술로 부상한 상황에서, 리가켐바이오는 개발 초기부터 축적해 온 기술적 우위를 임상 성과와 상업적 계약으로 연결해야 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
그 중심에는 자체 ADC 플랫폼 ‘컨쥬올(ConjuALL)’이 있다. 컨쥬올은 의약화학 기반 기술을 바탕으로 항체의 특정 부위에 원하는 수량의 페이로드를 부착하는 결합 기술, 혈중 안정성과 암세포 특이적 약물 방출 능력을 갖춘 링커, 신규 기전 페이로드로 구성된 플랫폼이다. 김용주 회장이 오랜 기간 쌓아온 의약화학 기반 신약개발 경험이 리가켐바이오의 ADC 플랫폼 경쟁력으로 이어진 대표 사례다.
리가켐바이오는 이 플랫폼을 앞세워 글로벌 제약사들과 기술이전 성과를 쌓아왔다. 2022년 암젠과 ADC 원천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2023년에는 얀센에 TROP2 표적 ADC 후보물질 LCB84를 이전했다. 2024년에는 일본 오노약품공업과 L1CAM 표적 ADC 및 ADC 플랫폼 패키지 기술이전 계약을 맺으며 파트너십을 확대했다. 월드 ADC 어워즈에서도 ‘베스트 ADC 플랫폼 테크놀로지’ 부문을 여러 차례 수상하며 플랫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올해는 기술 수출한 주요 파이프라인들의 임상 데이터가 대거 도출되는 '결실의 해'가 될 전망이다. 가장 진척이 빠른 것은 중국 포순제약(Fosun Pharma)와 익수다(Iksuda Therapeutics)에 이전된 HER2 표적 ADC ‘LCB14’로, 연내 중국 유방암 3상, 글로벌 1b상 결과 공개가 예상된다.
이외에도 시스톤파마(CStone Pharmaceuticals)에 이전된 ROR1 표적 ADC ‘LCB71’의 고형암 1b상 중간 결과 발표 및 넥스트큐어(NextCure)와 협력 중인 B7-H4 표적 ADC ‘LNCB74’ 의 1상 개념검증(PoC) 데이터가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임상 데이터들은 리가켐바이오 ADC 플랫폼의 신뢰도를 높이는 동시에 추가적인 기술 이전의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리더십 개편은 이러한 기술적 성과를 사업적 승리로 연결하기 위한 포석이다. 신임 박세진 대표는 "전 세계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돈으로 시간을 사겠다"며 오리온그룹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속도전을 예고했다. R&D 총괄 채제욱 수석부사장과 AI 중개연구 전문가인 옥찬영 상무의 전면 배치는 임상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고도화된 기술 플랫폼과 자본력, 그리고 전문 경영 체제의 결합이 리가켐바이오를 글로벌 톱티어 ADC 기업으로 안착시킬 수 있을지가 시장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