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달러를 넘어서는 치료제는 많아졌다. 그중 몇 개나 실제로 잘 팔렸을까?
초고가 유전자 치료제가 잇따라 승인되며 기록은 계속 갱신되지만, 상업적 성과는 약물마다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앞서 더파마뉴스는 ‘60억 원 시대 연 유전자 치료제… ‘비싸도 팔리는 약’의 조건은?’을 통해 초고가 의약품의 가격 지형을 살펴본 바 있다. 이번 기사는 단순한 가격 순위를 넘어, Top 10에 오른 초고가 치료제 중 실제 매출원으로 자리 잡은 사례를 짚어본다. 그 출발점으로 임상 성과와 상업화 전략을 모두 입증한 카스게비를 먼저 살펴본다.

카스게비, 노벨상 수상 기술의 시장 착륙을 증명하다

카스게비(Casgevy)는 버텍스(Vertex)와 크리스퍼 테라퓨틱스(CRISPR Therapeutics)가 공동 개발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승인된 CRISPR 기반 유전자 편집 치료제이다. 2023년 12월 FDA로부터 겸형 적혈구 빈혈(SCD) 적응증을 획득했으며, 2024년 1월 수혈의존성 베타지중해성빈혈(TDT) 치료제로 추가 승인받았다. 이후에는 미국을 넘어 영국, EU, 캐나다 등 주요 국가들로 발빠르게 지역을 넓히며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SCD와 TDT는 모두 헤모글로빈의 구성 요소인 베타 글로빈 유전자의 이상으로 발생한다. 카스게비는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직접 수선하는 대신, 태아기에만 생성되고 멈추는 감마 글로빈의 발현을 다시 활성화하는 우회적 기전을 택했다. 이를 통해 생성된 태아 헤모글로빈(HbF)이 비정상 헤모글로빈(HbS)의 기능을 대체함으로써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한다. 특히 SCD 환자의 고통스러운 통증 발작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기존 관리 요법을 넘어선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미국 출시 가격은 220만 달러(약 32억 원)로 책정되었다. 초고가 논란이 있었으나, 평생 수혈과 입원 치료를 반복해야 하는 환자의 생애 의료비용과 비교할 때 원샷 치료제로서의 경제적 효용성을 인정받았다.
미충족 수요 높았던 SCD와 TDT
겸형 적혈구 빈혈(SCD)은 전 세계적으로 약 800만 명, 미국 내 약 10만 명의 환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질환의 임상적 핵심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혈관 폐쇄 위기(VOC, Vaso-Occlusive Crises)’의 관리이다. VOC는 응급실 내원이 필수적일 만큼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여 환자의 삶의 질을 현저히 저하시킨다. 카스게비가 출시되기 전에 유일했던 근본적인 치료법인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은 시술 사망률이 5~20%에 달해 접근성이 제한적이다. 이에 대부분의 환자는 히드록시우레아(Hydroxyurea) 복용이나 정기적 수혈 등 보조적 요법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이는 VOC를 완전히 차단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수혈의존성 베타지중해성빈혈(TDT)은 미국 내 환자 수가 약 1,000~1,500명 수준인 희귀질환이다. 경증과 달리 중증 환자는 생존을 위해 평생 정기적인 적혈구 수혈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잦은 수혈은 체내 장기에 철분이 과도하게 축적되는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하며, 이를 관리하기 위한 추가적인 의료 부담이 지속 발생한다. 따라서 수혈 의존도를 낮추거나 없앨 수 있는 대체 치료제에 대한 시장의 미충족 수요가 매우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
미충족 수요 파고든 카스게비의 임상 결과

새로운 치료제로서 카스게비의 가능성은 임상 데이터로 입증되었다. 카스게비는 BCL11A 유전자 편집을 통해 태아 헤모글로빈(HbF) 수치를 높이는 기전으로, 겸형 적혈구 빈혈(SCD)과 수혈의존성 베타지중해성빈혈(TDT) 환자 모두에서 1차 평가지표 달성률 90% 이상을 기록하며 상업적 성공의 근거를 마련했다.
SCD 임상 CLIMB-121 결과에 따르면, 12세 이상의 SCD 환자 31명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93.5%(29명)가 12개월 이상 심각한 혈관 폐쇄 위기(VOC)를 겪지 않는 ‘VF12’를 달성했다. 이는 환자의 삶을 파괴하던 통증 발작이 사실상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더욱 주목할 점은 입원을 요하는 중증 VOC 예방률(HF12)이다. 평가 가능한 환자 30명 전원(100%)이 12개월 이상 병원 입원을 필요로 하지 않아, 환자의 삶을 파괴하던 통증과 입원의 굴레를 끊어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러한 효능은 체내 태아 헤모글로빈(HbF) 비율이 40% 이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바이오마커 데이터에 의해 뒷받침된다.
단기적 효능을 넘어선 지속성 역시 확인되었다. 버텍스는 CLIMB-121 참여 환자를 대상으로 장기 안전성 및 효과를 추적하는 ‘CLIMB-131’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 공개된 데이터에 따르면 선행 연구에서 VF12를 달성한 환자 100%가 평균 35개월의 추적 관찰 기간 동안 VOC-free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카스게비가 평생에 걸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원샷 치료제임을 시사한다.
TDT 임상 CLIMB-111에서도 고무적인 성과를 입증했다. 평가 가능한 12세 이상 TDT 환자 35명 중 91.4%(32명)가 12개월 이상 수혈 없이 헤모글로빈 수치를 유지하는 ‘수혈 독립(TI12)’에 도달했다. 이들의 평균 수혈 독립 지속 기간은 22.5개월에 달해 일시적 호전이 아닌 장기적 치료 효과를 증명했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카스게비는 경쟁 약물 대비 우수한 프로파일을 보였다. 혈소판 감소나 감염 등 조혈모세포 이식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부작용 외에, 카스게비의 유전자 편집 기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심각한 특이적 부작용은 보고되지 않았다. 버텍스는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2026년 상반기 중 5~11세 환자군에 대한 글로벌 승인 신청을 진행할 계획이다.
상업화의 관건, ATC 네트워크 구축

카스게비의 상업적 성공을 위한 첫 관문인 급여 등재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미국과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최대 시장인 이탈리아, 그리고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까지 급여권에 포섭하며 글로벌 시장 접근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유전자 치료제 특성상 보험 적용이 곧바로 처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카스게비 상업화의 진짜 승부처는 고난도 시술을 수행할 수 있는 공인 치료 센터(ATC, Authorized Treatment Center)의 확보에 있다.
카스게비는 체외(Ex-vivo) 방식의 치료제로, 환자의 세포를 채집하여 제조 시설로 보내고, 편집 후 다시 환자에게 이식하는 복잡한 공급망 관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ATC의 숫자는 곧 해당 약물의 처방 수용 능력(Capacity)이자 매출의 선행지표가 된다. 이에 버텍스는 출시 초기부터 ATC 확보에 집중했다. 그 결과 출시 약 1년 반 만인 2025년 3분기 기준, 미국 내 62개소를 포함해 전 세계 75개 이상의 ATC를 가동하며 환자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다시 말해 환자가 거주지 인근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실제 처방으로 이어지는 전환율을 극대화한 것이다.
이러한 인프라 선점 효과는 2025년 실적에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세포 채집부터 투약(매출 인식)까지 약 6~9개월의 긴 리드타임(Lead-time)이 소요됨에 따라 2024년 매출은 미미했으나, 대기 환자들의 투약이 본격화된 2025년 들어 1·2분기 매출이 각각 1,420만 달러, 3,040만 달러로 계단식 성장을 보였다.
비록 3분기에는 매출이 감소했으나, 버텍스 측은 연말에 집중된 투약 스케줄을 근거로 4분기 매출이 급증할 것임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2025년 연간 총매출은 1억 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ATC 네트워크가 안정화되고 세포 채집 환자 풀(Pool)이 누적될수록, 이러한 매출 변동성은 줄어들고 구조적인 우상향 추세가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카스게비의 안정적인 시장 진입은 버텍스의 안정적인 재무 구조 덕분에 가능했다. 버텍스는 2024년 말 기준 약 110억 달러(약 15조 원) 이상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낭포성 섬유증(CF) 치료제 ‘트리카프타(Trikafta)’를 필두로 한 막대한 현금 창출력 덕분이다.
이러한 풍부한 유동성은 카스게비 상업화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유전자 치료제 특성상 초기에는 막대한 R&D 비용과 ATC 구축을 위한 판매관리비로 인해 구조적인 적자가 불가피하지만, 버텍스는 이를 자체 현금으로 충분히 흡수하며 장기적인 인프라 투자를 지속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재무적 여유가 블루버드 바이오(Bluebird Bio)와 같은 경쟁사와 버텍스를 구분짓는 성공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카스게비의 사례는 ‘비싼 약’이 곧바로 캐시카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미충족 수요와 설득력 있는 임상 데이터, 그리고 ATC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상업화 전략이 맞물릴 때 비로소 실제 매출로 이어짐을 입증한 사례다. 다음 편에서는 또 다른 초고가 치료제이자, 유전자 치료 시장의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 엘레비디스를 살펴볼 예정이다.
Editor 이태계, 서윤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