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식품의약국(FDA) 산하 약물평가연구센터(CDER)는 2025년 한 해 동안 총 46개의 신규 치료제를 승인했다. 이는 지난 5년간의 연평균 승인 건수인 48건과 유사한 수준으로, 정책 혼선과 조직 불안정 속에서도 일정 수준의 심사 역량을 유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승인 건수 자체보다 주목할 점은, FDA의 규제 환경과 글로벌 경쟁 구도가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한 해였다는 점이다.
조직 불안정 뚫고 46건 승인했으나…중국에 첫 역전 허용
2025년 상반기부터 FDA 내부의 혼란은 가시적인 수준으로 드러났다. CDER과 생물의약품평가연구센터(CBER) 소속 직원의 18% 이상이 해고되거나 퇴사했으며, CDER 국장직은 다섯 차례나 교체되는 등 지휘 체계의 불안정이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DA는 심사 기간을 2개월로 단축하는 위원장 직속 국가 우선 바우처(CNPV) 프로그램 등 새로운 승인 경로를 도입하며 규제 효율화와 혁신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모색했다.
그러나 내부 혼란이 이어지는 와중에, 중국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신약 승인 역량을 끌어올리며 글로벌 구도에 변화를 만들어냈다.

중국의 신약 승인 건수는 2019년 10건에 불과했으나, 2024년 48건으로 증가한 데 이어 2025년에는 68건까지 확대됐다. 반면 미국은 2020년 이후 연간 승인 건수가 50건 안팎에서 정체된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2025년은 FDA가 자리를 지키는 사이 중국이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해로 평가되며, 미국의 제도적 혼선이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규제 경쟁력에서의 위치 변화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여전한 항암제 중심 구조…블록버스터 후보 2개 승인
2025년 승인된 약물들을 적응증별로 분석한 결과, 항암제가 전체 승인의 35%(16건)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5년 평균치인 29%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상업적 잠재력이 가장 큰 1, 2위 제품도 모두 항암제로, 항암제의 시장 주도력을 재확인시켰다.
예상 매출 1위를 차지한 약물은 머크(Merck & Co., NYSE: MRK)의 키트루다 큐렉스(Keytruda Qlex)다. 알테오젠의 기술이 적용된 피하주사 제형으로, 기존 30분 이상 걸리던 투여 시간을 1~2분으로 단축해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2028년 정맥주사 제형의 특허 만료를 앞둔 머크의 핵심 방어 수단이며, 2030년까지 약 93억 달러(약 13조 4,106억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메가블록버스터 후보다.
2위는 다이이찌산쿄(Daiichi Sankyo, TYO: 4568)와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NASDAQ: AZN)의 다트로웨이(Datroway)다. 다트로웨이는 양사가 공동 개발한 두 번째 항체약물접합체(ADC)로, 유방암과 비소세포폐암(NSCLC)에서 각각 정식 및 가속 승인을 받았으며 2030년까지 약 42.8억 달러(약 6조 2,563억 원)의 매출이 기대된다. 비소세포폐암의 경우, 향후 1차 치료제로 확대될 경우 2030년 매출이 59억 달러(약 8조 6,062억 원)까지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기타 승인된 항암제로는 ▲애브비(AbbVie, NYSE: ABBV)의 c-Met 표적 ADC 엠렐리스(Emrelis) ▲리제네론(Regeneron, NASDAQ: REGN)의 T세포 인게이저(TCE) 이중항체 리노지픽(Lynozyfic) ▲베라스템 온콜로지(Verastem Oncology, NASDAQ: VSTM)의 아브맵키 팍진자 코팩(Avmapki Fakzynja Co-Pack) 등이 가속 승인을 받았다. 이들은 향후 확증 임상을 통한 유익성 증명이 과제로 남아있다. 이 중 아브맵키 팍진자 코팩은 아직 승인되지 않은 두 개의 신약(아부토메티닙과 데팍티닙) 조합이 경구용 치료제로 동시에 승인된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항암제 외 분야에서는 심혈관(Cardiology) 영역이 5건(11%), 알레르기 및 염증 질환이 4건(9%)으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유전성 혈관부종(HAE) 치료제 시장에서만 엑터리(Ekterly)와 다운제라(Dawnzera), 안뎀브리(Andembry) 3개 제품이 승인되며 치열한 점유율 경쟁을 예고했다.
저분자 신약의 강세 속 키나아제 억제제 전성기
모달리티별로는 전체 승인 46개 중 저분자 신약이 31개를 차지하며 시장의 주류임을 입증했다. 이는 제약사들이 경제성과 복용 편의성이 뛰어난 저분자 화합물 개발에 여전히 높은 비중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키나아제 억제제는 10개가 승인되어 저분자 신약의 약 3분의 1을 차지, 단일 연도 기준 역대 최대 비중을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노바티스(Novartis, NYSE: NVS)의 만성 자발성 두드러기(CSU) 치료제 랩시도(Rhapsido)는 FDA가 승인한 100번째 키나아제 억제제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랩시도는 기존 주사제 중심의 치료 시장에서 경구제로서의 확실한 편의성을 앞세워, 2030년 매출 17.8억 달러(약 2조 5,934억원) 규모의 블록버스터 성장이 기대된다. 이는 키나아제 억제제 계열이 항암제를 넘어 면역 질환 등 다양한 적응증으로 영역을 성공적으로 확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바이오의약품은 총 12개가 승인되었으며, 세부적으로는 단일클론항체(mAb) 8개, 항체-약물접합체(ADC) 2개, T세포 인게이저(TCE) 이중항체 1개, 그리고 최초의 아드넥틴(Adnectin) 기반 치료제 1개가 포함됐다. 리브 테라퓨틱스(LIB Therapeutics)의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제 레로콜(Lerochol)이 최초의 아드넥틴 기반 치료제로 허가되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아드넥틴은 단일클론항체의 1/10 크기인 소형 단백질 스캐폴드(scaffold)로, 작은 크기에도 표적인 PCSK9에 강한 결합력을 보인다. 기존 PCSK9 표적 항체들이 격주 투여와 냉장보관이 필요했던 것과 달리, 레로콜은 월 1회 투여하며 상온 보관이 가능하다.
또한,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Oligonucleotide) 분야에서도 siRNA 2건, 안티센스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SO) 1건 등 총 3건의 승인이 이어졌다. 이는 2023년(4건), 2024년(2건)에 이어 해당 모달리티가 차세대 치료제로서 안정적인 승인 궤도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거대한 미충족 수요를 노린 First-in-class 신약들
혁신 기전(First-in-class) 분야에서는 사회적 난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신약들이 돋보였다.
먼저 버텍스(Vertex Pharmaceuticals, NASDAQ: VRTX)의 저나벡스(Journavx)는 20년 만에 등장한 최초의 비오피오이드 진통제로, 미국 내 오피오이드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저나벡스는 통증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말초신경의 특정 나트륨 채널(NaV1.8)만 차단하여 통증을 완화하며, 중등도~심한 급성 통증 치료에 대해 승인되었다. 2030년까지 최대 37억 달러(약 5조 3,354억 원)의 매출 성장이 기대되는 2025년 최대 기대주로 꼽힌다.
공중보건의 위협인 내성균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 신규 항생제들의 성과도 뚜렷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NYSE: GSK)의 블루제파(Blujepa)와 이노비바(Innoviva, NASDAQ: INVA)의 누졸벤스(Nuzolvence)는 각각 요로감염과 임질 치료 분야에서 오랜 미충족 수요를 해소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블루제파는 플루오로퀴놀론 항생제와 같은 효소를 터깃하면서도, 효소와 결합하는 방식이 달라 내성 변이 발생 가능성을 낮췄다. 누졸벤스는 내성균에도 효능을 보이는 단회 투여 경구 항생제로, 치료 편의성을 크게 개선한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희귀 질환 영역에서는 ‘질환 최초’ 치료제가 5건 이상 배출되며 고무적인 성과를 냈다. 구체적으로는 ▲비낭포성 섬유증 기관지확장증 치료제 브린수프리(Brinsupri) ▲미만성 중뇌 신경교종 치료제 모데이소(Modeyso) ▲바스 증후군 치료제 포지니티(Forzinity) ▲티미딘 키나제 2 결핍증 치료제 카이제비(Kygevvi) ▲조혈모세포 이식 관련 혈전성 미세혈관병증 치료제 야르템리아(Yartemlea) 등이 허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중 인스메드(Insmed, NASDAQ: INSM)의 브린수프리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던 미국 내 50만 명의 환자군을 선점하며 블록버스터급 약물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브린수프리의 승인으로 인스메드는 주가 급등 하여 시총 300억 달러, 나스닥100 편입을 달성했다. 최근 만성 비부동염으로의 적응증 확장 임상에서 고배를 마시며 주가가 조정을 받기도 했으나, 이미 승인된 적응증만으로도 출시 첫 분기만에 시장 예상치를 3배 가까이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며 블록버스터로서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와스카이라가 보여준 CBER의 선택…비영리 유전자 치료의 가능성

미국 FDA 내에서 CDER이 주로 화학합성 의약품과 일부 바이오의약품의 심사를 담당한다면, CBER은 백신, 혈액제제, 세포·유전자 치료제 등 생물학적 제제를 전담한다. 2025년 한 해 동안 CBER은 총 18개의 품목을 승인했다. 이 중 10건은 시약 및 진단 관련 품목이었으나, 9건의 주목할 만한 신약이 포함되었다.
특히 이번 CBER 승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이탈리아의 비영리 재단인 폰다지오네 텔레톤(Fondazione Telethon ETS)의 유전자 치료제 와스카이라(Waskyra)의 승인이다. 이는 비영리 단체가 주도하여 승인을 이끌어낸 역사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와스카이라는 본래 GSK와 함께 개발을 시작했으나, 상업성이 낮다는 이유로 개발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던 초희귀 질환 유전자 치료제다. 폰다지오네 텔레톤은 비영리 바이오텍인 오펀 테라퓨틱스(Orphan Therapeutics Accelerator)와 협력하여 공급을 결정했고, 결국 FDA 승인까지 이끌어냈다.
이는 연간 대상 환자가 10명 미만인 초희귀 질환의 경우, 영리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을 비영리 모델이 성공적으로 메울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현재 진행 중인 가격 협상 결과는 향후 유전자 치료제 시장의 지속 가능성과 새로운 사업 모델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전망이다.
이 외에도 난치성 질환을 겨냥한 치료 옵션들이 다수 승인되었다. 제바스킨(Zevaskyn)은 세포 시트 기반 유전자 치료제로, 환자의 세포를 교정해 상처 부위에 직접 이식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팝지메오스(Papzimeos)는 재발성 호흡기 유두종증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면역 치료제로, 고릴라 아데노바이러스 벡터를 활용해 T세포 반응을 유도한다. 또한 모더나의 차세대 코로나19 mRNA 백신 mNEXSPIKE는 기존 대비 mRNA 사용량을 크게 줄이면서도 효율을 높인 제품으로, 연간 32억 달러(약 4조 4800억원) 이상의 매출이 기대되는 대형 품목으로 꼽힌다.
작성자 최지연
[참고문헌]
Nature Reviews Drug Discovery, 2025 FDA approvals
Nature Reviews Drug Discovery, FDA new drug approvals in Q1 2025
Nature Reviews Drug Discovery, FDA new drug approvals in Q2 2025
Nature Reviews Drug Discovery, FDA new drug approvals in Q3 2025
한국 바이오협회, 2025년 미국 FDA 신약 승인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