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신제품의 등장이나 후발 제네릭의 시장 진입은 통상적으로 기존 선두 제품의 ‘파이 나누기’로 직결된다. 특히 투약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자사 신약은 필연적으로 기존 자산의 자기잠식(Cannibalization)을 유발하며, 저가 제네릭의 공세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매출 절벽을 예고하는 가장 확실한 선행 지표로 통용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4월 30일(현지 시각) 발표된 일라이 릴리(Eli Lilly, 이하 릴리)의 2026년 1분기 실적에서 이러한 상식을 완전히 뒤엎었다. 매출 198억 달러(약 27조 원), 전년 동기 대비 56%라는 폭발적인 외형 성장 이면에 숨겨진 맥락은,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이 기존 시장의 궤도를 벗어나 전혀 다른 문법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경쟁 제품의 등장이 선두 제품의 수요를 빼앗는다는 통상적인 가정과 달리,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는 신약도 제네릭도 시장을 빼앗지 않았다. 오히려 경쟁이 심화할수록 파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더파마뉴스는 릴리의 1분기 실적 기저에 깔린 세부 데이터를 바탕으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시장 구조의 변화와 전략적 함의를 심층 분석했다.
경구용 비만치료제 ‘Foundayo’의 출시 초기 성적표

가장 먼저 주목할 대목은 릴리의 경구용 GLP-1 수용체 작용제 신약 ‘파운다요(Foundayo, 성분명 오르포글리프론)’가 거둔 예상을 뛰어넘는 초기 성적표다. 지난 4월 9일 시장에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파운다요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던 것이 사실이다. ‘먹는 약’이라는 압도적인 투약 편의성을 앞세운 만큼, 주사제인 젭바운드(Zepbound)의 처방 수요를 고스란히 갉아먹는 이른바 ‘자기잠식(Cannibalization)’의 덫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리야 유파(Ilya Yuffa) 글로벌 고객 역량 부문 사장 겸 미국사업부 대표가 2026년 1분기 실적발표에서 공개한 초기 처방 지표는 이러한 제약업계의 통상적인 우려를 완벽하게 불식시켰다.
원활한 초기 공급망을 바탕으로 빠르게 시장에 안착 중인 파운다요의 처방 데이터를 살펴보면, 전체 처방의 80% 이상이 이전에 인크레틴(Incretin) 계열 약물 치료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신규 환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출시 직후 초기 치료를 시작한 2만 명 이상의 환자 중 젭바운드나 위고비 등 기존 주사제에서 넘어온 비율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파운다요의 본질적 가치가 단순히 '젭바운드보다 먹기 편한 대체재'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오히려 주사바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오프라인 병원 접근성의 한계로 인해 비만 치료의 사각지대에 머물던 잠재 환자들을 시장 안으로 강하게 끌어들이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나아가 처방을 주도하는 의료진의 변화도 눈에 띈다. 파운다요를 처방한 8,000명 이상의 의사 중 약 3분의 1은 이전에 경구용 GLP-1을 단 한 번도 처방한 적이 없는 새로운 의료진이었다.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들까지 새로운 치료 옵션을 매개로 비만 치료 시장에 새롭게 유입되며 파이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릴리의 D2C 플랫폼인 ‘릴리다이렉트(LillyDirect)’를 비롯한 디지털 채널의 약진이다. 초기 파운다요 물량의 약 45%가 릴리다이렉트를 통해, 그리고 약 35%가 12개 이상의 원격 의료 플랫폼을 통해 소화됐다. 전통적인 대면 진료와 오프라인 약국 채널을 거치지 않고,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채널이 초기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한 것이다.
글로벌 제약 시장 전반에 거센 약가 인하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러한 직판매 및 디지털 채널의 확대는 단순한 유통망 추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PBM을 거치지 않아 중간 마진을 최소화하여 수익성을 방어하고 극대화하는 강력한 전략적 승부수다. 나아가, 반드시 오프라인 병원의 문턱을 넘어야만 했던 기존의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 환자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확장함으로써, 더 많은 잠재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결국 파운다요는 우려했던 내부 제품 간의 자기잠식 리스크를 상쇄하고도 남을 폭발적인 신규 수요 창출 효과를 완벽하게 입증해 냈다.
제네릭 세마글루타이드의 출시에도 끄떡없는 마운자로

일반적인 제약 생태계에서 오리지널 의약품에 가장 치명적인 위협은 특허 만료에 따른 저가 제네릭의 공세다. 그러나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는 이마저도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최근 인도 시장에 저렴한 제네릭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가 대거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운자로의 최근 몇 주간 처방량이 오히려 제네릭 진입 이전 대비 약 10%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기현상은 제네릭이 단순히 저가 공세를 펼치는 데 그치지 않고, 인크레틴 계열 비만 치료제에 대한 전반적인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시장 확대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인크레틴 기반 비만 치료제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한 신흥 시장에서, 접근성이 높은 제네릭의 등장은 의료진과 환자의 이목을 끌며 질환 및 치료에 대한 전반적인 인지도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제네릭이 초기 시장의 저변을 확대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면, 임상적 우위와 체중 감량 효과를 입증한 선두 제품이 확장된 시장의 프리미엄 수요를 흡수하는 구조적 공생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실제로 릴리 발표에 따르면 글로벌 인크레틴 시장은 전년 대비 77% 성장했으며, 릴리의 해외 인크레틴 시장 점유율은 53.2%를 기록하며 노보노디스크를 넘어섰다. 브라질, 한국 등 주요 국가에서도 마운자로가 약 60% 수준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전체 시장 성장에 따른 수혜를 안정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비만 시장이 일반 제약 시장과 다르게 움직이는 3가지 구조적 이유
비만 치료제 시장이 이처럼 일반적인 제약 시장의 궤도를 벗어난 흐름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데이브 릭스(Dave Ricks) 릴리 회장은 이번 어닝콜에서 비만 치료제 시장만이 가진 세 가지 구조적 특이점을 제시하며, 질환군을 바라보는 기존의 프레임을 재조정할 필요성을 시사했다.
첫 번째 요인은 10억 명 단위의 방대한 잠재 수요와 이에 대비되는 낮은 시장 침투율이다. 전 세계적으로 비만 및 관련 대사 질환을 앓고 있는 인구는 10억 명 이상으로 추산되지만, 현재 GLP-1 등 최신 약물로 치료를 받는 환자 비율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미치료 환자군의 규모가 월등히 크기 때문에, 현시점의 시장 병목 현상은 경쟁사와의 점유율 싸움이 아니라 아직 치료를 시작하지 않은 환자를 어떻게 시장 안으로 편입시킬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두 번째는 B2C 소비재에 가까운 ‘자비 부담(Self-pay)’ 중심의 지불 구조다. 릭스 회장에 따르면, 미국 외 시장에서 발생하는 마운자로 매출의 75%가 환자 본인 부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비만 치료제가 건강보험 급여 가이드라인에 크게 의존하는 전통적인 전문의약품 시장과 달리, 가격 탄력성과 환자 본인의 선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재적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비 부담 위주의 시장 환경은 자연스럽게 세 번째 특이점인 ‘가격과 물량 간의 비선형적 관계’로 이어진다. 환자가 직접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에서는 특정 가격 저항선이 낮아질 때 수요가 비례 이상으로 탄력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띤다. 릭스 회장은 실제로 제품 가격을 조정할 때마다 단순한 선형적 확대를 넘어서는 수요 증가가 관찰된다고 설명했다. 중국을 비롯한 대규모 시장에서 가격 인하 조치 이후 나타난 급격한 물량 확대가 가격 하락으로 인한 매출 감소분을 크게 상회한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비만 치료제 시장은 구조적인 미충족 수요와 소비재적 특성이 결합하여, 경쟁 심화나 가격 조정이 오히려 전체 시장 규모를 비선형적으로 팽창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시대, 새롭게 쓰이는 제약 산업의 공식
일라이 릴리의 2026년 1분기 실적은 단순한 매출 호조를 넘어 비만 치료제 시장의 진화 방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다. 신약 ‘파운다요’는 주사제인 젭바운드의 수요를 잠식하기보다, 치료를 망설이던 신규 환자와 새로운 처방 의료진을 시장으로 유입시키는 역할을 했다. 인도 시장의 제네릭 세마글루타이드 역시 마운자로의 입지를 훼손하는 대신, 인크레틴 기반 치료제에 대한 전반적인 인지도를 끌어올리며 전체 시장의 저변을 넓히는 기제로 작용했다.
이는 현재의 비만 치료제 시장이 전통적인 전문의약품 시장의 궤적을 따르지 않고 있음을 명확히 시사한다. 방대한 미치료 환자군, 자비 부담(Self-pay) 중심의 소비재적 특성, 그리고 가격 접근성에 반응하는 비선형적 수요 확대 구조가 맞물리면서, 현 국면에서의 경쟁은 점유율을 다투는 '파이 나누기'가 아니라 전체 규모를 팽창시키는 '파이 키우기'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결국 릴리의 1분기 데이터는 비만 치료제 시장이 제한된 파이를 두고 싸우는 성숙기가 아니라, 본격적인 대중화 단계에 진입한 구조적 성장기임을 방증한다. 후발 주자나 제네릭의 등장은 단기적 위협일 수 있으나, 동시에 닫혀 있던 잠재 시장의 문을 여는 강력한 동력이다. 현시점 비만 시장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진정한 리스크는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이처럼 다변화하며 팽창하는 새로운 수요를 흡수할 전략적 채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Editor 남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