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투자 행사 ‘JP 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JPM 2026)’가 15일(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올해 JPM 2026에서는 비만 치료제 시장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과거 체중 감량 수치 경쟁에 집중됐던 논의는 투여 편의성, 치료의 질, 장기 관리 전략으로 확장됐고, 시장의 관심 역시 단일 약물의 효능을 넘어 복용 방식·공급망·병용 전략 전반으로 이동했다.

‘편의성’과 ‘질적 관리’... 시장의 문법이 바뀌다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수용체 작용제를 중심으로 한 단순 체중 감량 단계를 지나, 환자의 편의성과 근육 보존 등 치료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업계의 R&D 초점은 주 1회 제형을 넘어 월 1회 투여가 가능한 지속형 주사제, 복용 부담을 낮춘 경구용 제제, 체중 감량 과정에서의 근육 손실을 최소화하는 복합제 개발로 옮겨가고 있다.
일라이 릴리(Eli Lilly and Company, NYSE: LLY)는 이번 컨퍼런스에서 경구용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인 오포글리프론(Orfoglipron)의 2분기 내 승인 가능성을 시사하며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예고했다. 오포글리프론은 현재 FDA의 국가 우선순위 바우처(CNPV)를 통해 신속 심사를 받고 있다. 또한 릴리는 오포글리프론의 한 달 복용 비용을 150달러(약 22만 1,037원) 수준으로 책정하겠다고 밝혀, 시장 침투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드러냈다.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 A/S, NYSE: NVO)는 ‘질적 다각화’를 전면에 내세워 차세대 비만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강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위고비 성분과 아밀린 유사체를 결합해 지난 12월 FDA 승인 신청을 마친 ‘카그리세마(CagriSema)’가 있으나, 감량 수치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노보 노디스크는 GLP-1/GIP/글루카곤(3G) 삼중 작용제 ‘UBT251’와 GLP-1/GIP/아밀린 삼중 작용제 등 포트폴리오 전반을 넓히는 전략을 택했다. 중국 유나이티드 래버러토리스로부터 약 20억 달러에 도입한 3G 삼중 작용제는 초기 연구에서 12주 만에 약 15%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여, 같은 기전인 릴리의 ‘레타트루타이드(Retatrutide)’에 대응할 카드로 거론되고 있다. 나아가 노보 노디스크는 이번 JPM 기간 중 200회 이상의 미팅을 진행하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새로운 후보 물질과 플랫폼 기술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격돌하는 두 거인: "약물 상호작용" vs "복용 편의성”
글로벌 양강인 두 기업은 서로를 향한 견제도 숨기지 않았다. 노보 노디스크 경영진은 릴리의 오포글리프론이 고지혈증 환자들이 흔히 복용하는 스타틴 계열 약물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상지질혈증을 동반한 비만 환자 비중을 고려할 때 잠재적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자사의 펩타이드 기반 경구제 리벨서스는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안전성 데이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릴리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데이비드 릭스 회장은 해당 주장을 근거 없는 낭설로 일축하며, 오포글리프론은 임상 2상에서 간 독성 등 유의미한 안전성 신호가 없었고 스타틴 복용 환자를 포함한 대규모 임상에서도 체중 감량 효과와 내약성을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리벨서스는 엄격한 공복 조건과 복잡한 복용법으로 환자 편의성이 낮다고 지적하며, 오포글리프론은 음식 섭취와 무관하게 복용 가능한 비펩타이드 저분자 약물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여기에 화학 합성이 용이하고 냉장 유통이 필요 없는 구조적 장점을 강조하며, 대량 생산과 글로벌 공급망 측면에서도 우위에 있음을 부각했다.
주도권 싸움의 다음 장, 후발 주자들의 등장
빅파마 간의 주도권 싸움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후발 주자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화이자(Pfizer Inc., NYSE: PFE)는 다누글리프론(Danuglipron)의 실패 이후 단행한 멧세라(Metsera, Inc.) 인수를 기점으로 비만 시장 재진입을 공식화했다. 알버트 불라(Albert Bourla) 화이자 CEO는 이번 컨퍼런스에서 “비만 치료제 시장이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와 유사하다”며 2030년 15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화이자는 약 100억 달러를 투입해 확보한 멧세라의 파이프라인을 바탕으로 2026년 한 해 동안에만 총 10건의 비만 관련 임상 3상을 개시할 계획이다. 특히 월 1회 투여가 가능한 장기 지속형 GLP-1 주사제 ‘MET097’의 2028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암젠(Amgen Inc., NASDAQ: AMGN) 역시 투여 주기 연장에 초점을 맞췄다. 암젠의 핵심 파이프라인인 마리타이드(MariTide, maridebart cafraglutide)는 2상 연장시험 연구 결과, 월 1회 투여만으로도 체중 감량 효과를 유지할 수 있음을 입증하며 이목을 끌었다. 임상 데이터에 따르면 52주간 최대 20% 수준의 감량을 달성한 환자들의 대다수가 투여 빈도를 낮춘 유지 요법에서도 감량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암젠은 현재 역사상 최대 규모인 마리타임(MARITIME) 프로그램을 통해 총 6개의 글로벌 임상 3상을 가동하며 상업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로슈(Roche Holding AG, SWX: ROG)는 이번 컨퍼런스에서 비만 치료제 분야의 글로벌 톱3 플레이어로 도약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테레사 그레이엄(Teresa Graham) 로슈 제약 부문 최고경영자(CEO)는 이중 작용제 CT-388과 경구용 CT-996 등 총 5개의 신규 후보물질을 기반으로 한 전략을 공개했다. 핵심 후보물질인 CT-388은 1상 임상시험에서 24주 만에 18.8%의 체중 감량 효과를 입증했으며, 로슈는 단일 요법뿐 아니라 아밀린 유사체 등을 결합한 병용요법을 통해 비만과 동반 질환을 통합 관리하는 맞춤형 치료 모델을 완성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바이킹 테라퓨틱스(Viking Therapeutics, Inc., NASDAQ: VKTX)는 이중 작용제 VK2735의 임상 데이터를 발표하며 경쟁력 있는 후보물질로 주목받았다. 브라이언 리언(Brian Lian) 대표는 피하주사 제형의 VK2735가 2상 임상시험(VENTURE)에서 13주 만에 최대 14.7%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다는 결과를 공유하며, 경구 제형에 대해서도 2상 진행 중임을 밝혔다. 리언 대표는 비만 시장의 전략적 중요성이 예상보다 크다고 언급하며, 독자 개발과 파트너링을 모두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리제네론(Regeneron Pharmaceuticals, Inc., NASDAQ: REGN)은 비만 치료 시 발생하는 근육 손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올해 리제네론은 GIP/GLP-1 작용제 올라토레파티드(olatorepatide)의 중국 3상 임상시험을 개시할 예정이며, 세마글루티드(semaglutide)와 근육 보존 항체(trevogrumab, garetosmab)의 조합에 대한 추가 근육 보존 데이터를 발표할 계획이다.
틈새 공략하는 K-바이오
국내 기업들도 플랫폼 기술과 다중 작용제 전략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의 빈틈을 공략하고 있다.
셀트리온(Celltrion, Inc., KRX: 068270)은 4중 작용제 방식의 비만 치료제 CT-G32를 소개하며, 개인별 효과 편차와 근 손실 부작용 개선을 핵심 차별화 포인트로 제시했다. CT-G32는 내년 하반기 임상시험계획서(IND)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D&D Pharmatech, KOSDAQ: 347850)은 비만과 대사이상 지방간염(MASH)을 동시에 타깃하는 DD01의 경쟁력을 피력했다. 이슬기 대표는 DD01가 단 12주 투여만으로도 경쟁약 서보듀타이드가 48주 투여 간 투여해 얻은 지방간 감소 수치와 대등한 결과를 보이면서도 낮은 임상 중단율을 보였음을 강조했다. DD01은 현재 2상 전체 환자의 48주 투약을 마쳤으며, 올해 5월 조직생검을 통한 MASH 해소 및 섬유화 개선 효과를 확인할 예정이다.
Editor 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