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적으로 증명된 ‘플랫폼 파워’
에이비엘바이오(ABL Bio)가 글로벌 제약사와의 대규모 파트너십을 통해 플랫폼 기반 바이오텍으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최근 1년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일라이 릴리(Eli Lilly and Company) 등과 수조 원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키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에이비엘바이오의 성장세는 수치로 극명히 드러난다. GSK와의 계약금이 반영된 2025년 매출은 전년 대비 137.6% 증가했으며, 릴리로부터 수령할 계약금 또한 2026년 매출로 인식될 예정이라 외형 성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R&D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ABL111'은 임상 1b상에서 유의미한 항암 효능 신호를 확인했고, 차세대 이중항체 기반 ADC(항체-약물 접합체)인 'ABL206'과 'ABL209'가 미국 FDA로부터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으며 글로벌 임상 단계에 본격 진입했다.
잇따른 좌절을 이겨낸 이상훈 대표의 뚝심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이상훈 대표이사의 연구 중심 경영이 자리하고 있다. 이 대표의 커리어는 겉보기에 화려한 엘리트 코스의 전형이다. 서울대학교 생물교육과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하버드와 스탠퍼드 의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실무 현장에서도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제넨텍(Genentech), 엑셀리시스(Exelixis) 등 세계적인 신약 개발사에서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나 그는 2009년, 안정적인 억대 연봉을 보장하던 미국 생활을 뒤로하고 창업을 결심했다. 당시 글로벌 경제 위기가 불어닥친 시점에 월급 1억 원 수준의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두고 주변에서는 "미친 짓"이라며 만류했으나, 자신만의 신약을 만들겠다는 열망은 꺾이지 않았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첫 창업지였던 파멥신(PharmAbcine)에서는 경영관 차이로 인해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후 바이오 사업부 총괄로 합류한 한화케미칼(현 한화솔루션) 역시 1년 만에 그룹 차원의 바이오 사업 철수 결정으로 해체되는 시련을 겪었다.
50대 초반, 커리어의 정점에서 맞이한 연속된 좌절은 그를 인생 최대의 슬럼프로 밀어넣었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2016년, 53세의 나이에 구체적인 물질조차 없이 오직 '이중항체'라는 아이디어 하나를 들고 무작정 투자 시장의 문을 두드린 것이 현재의 에이비엘바이오를 탄생시킨 승부수가 되었다.
기술의 핵심: 뇌의 문을 여는 셔틀, '그랩바디-B’
현재 에이비엘바이오를 지탱하는 핵심은 뇌혈관장벽(BBB) 투과 플랫폼인 '그랩바디-B(Grabody-B)'다. 기존 단일항체 치료제가 뇌로 전달되는 비중이 0.1% 내외에 불과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셔틀 항체를 결합한 이 기술은 퇴행성 뇌질환 분야의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특히 최근 BBB 투과 기술을 적용한 의약품의 첫 승인 사례가 등장하면서 관련 플랫폼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디날리 테라퓨틱스(Denali Therapeutics)의 헌터증후군 치료제 ‘아블라야(Avlayah, 성분명 tividenofusp alfa)’는 TfR(트랜스페린 수용체)을 활용한 BBB 셔틀 기술을 기반으로 2026년 FDA 가속승인을 획득했다.
BBB 셔틀 기술은 크게 TfR과 IGF-1R 타겟 계열로 나뉘어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데, 에이비엘바이오의 ‘그랩바디-B(Grabody-B)’는 IGF-1R을 타깃으로 약물을 뇌세포까지 전달하는 차별화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서로 다른 수용체를 활용하는 전략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BBB 투과 기술의 임상적 유효성이 실제 승인 사례로 입증되면서 관련 플랫폼 전반에 대한 기대감이 확대되는 흐름이다.
기업 가치 성장에 따른 성과 보상 본격화
경영 성과는 보상으로도 이어졌다. 2025년 상반기 공시에 따르면 이상훈 대표는 급여 2억 9,160만 원과 상여 5억 8,080만 원을 포함해 총 8억 7,800만 원의 보수를 수령했다. 이는 2024년 연간 보수 총액인 8억 8,900만 원과 맞먹는 수준으로, 대규모 기술 이전 성사 및 기업 가치 제고에 따른 성과 보상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2026년 3월 기준, 에이비엘바이오는 시가총액 약 10조 원 안팎을 형성하며 코스닥 상위권에 안착했다. 회사는 확보된 대규모 자금을 바탕으로 이중항체-ADC 등 차세대 파이프라인 R&D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3세에 던진 무모해 보이던 도전이 수조 원대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으로 귀결되며, 과학자이자 경영자로서의 이 대표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공고해지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