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능이 가장 뛰어난 약이 가장 좋은 약일까
신약개발, 특히 항암제 시장에서 '좋은 약'의 정의는 대체로 하나로 수렴한다. 더 높은 반응률, 더 긴 무진행생존(PFS), 더 분명한 전체생존(OS) 개선. 임상 지표를 가장 크게 개선한 약이 가장 좋은 약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가 언제나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2026년 6월 14일, 일라이 릴리(Eli Lilly)는 유럽혈액학회(EHA)에서 BTK 억제제 제이피르카(Jaypirca, 성분명 피르토브루티닙)의 임상 3상 BRUIN CLL-322 결과를 공개했다. 재발성·불응성 만성림프구성백혈병(CLL/SLL) 환자에서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45% 낮췄다는 수치가 주목받았지만, 더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다. 릴리가 베네토클락스(venetoclax, 제품명 Venclyxto/Venclexta) 기반 요법에 얹은 이 약을, 2년이라는 정해진 기간만 쓰고 멈추는 time-limited 방식으로 설계했다는 점이다.

BTK 억제제는 본래 질병이 진행하거나 견딜 수 없는 독성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복용'하는 것이 표준이다. 그런 BTK 억제제마저 끝이 있는 치료로 설계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CLL 치료의 패러다임이 끝이 있는 치료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베네토클락스가 있다. 한국에는 생소하지만 서구권에서는 가장 흔한 성인 백혈병인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시장에서 이것이 어떻게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한국에선 낯설지만, 서구에선 가장 흔한 백혈병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골수에서 만들어져 면역을 담당하는 백혈구의 일종인 B림프구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혈액암이다.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 없이 건강검진 등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병이 진행되면 빈혈, 감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