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K-바이오의 저력을 '숫자'로 증명하다
2025년은 K-바이오의 저력을 시장에 다시 한번 각인시킨 한 해였다. 과거처럼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구체적인 글로벌 기술이전 성과가 기업 가치를 견인했다. 대표적으로 오름테라퓨틱스는 IPO 이전에 1조 3,000억 원 규모의 기술이전을 성사시키며 주목받았고, 공모가(2만 원) 대비 약 6배 수준인 12만 1,100원(1월 27일 종가 기준)에 거래되며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알지노믹스 역시 일라이 릴리와 2조 원대 계약을 체결한 이후 상장 후 한 달 만에 주가가 8배 수준으로 상승하며, 성과로 실력을 입증한 기업에 대한 투자자 신뢰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흐름은 2021년 바이오 IPO 열풍 당시와 양상이 다르다. 당시에는 실적 없이 장밋빛 비전만으로 밸류에이션이 과도하게 부풀려지던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기술이전 성과와 매출 가시성이 투자 판단의 핵심 지표로 자리 잡고 있다. 허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기업들이 주목받으면서, 얼어붙었던 바이오 IPO 시장에도 서서히 회복 기류가 감지된다.
이 흐름을 이어 2026년 초 IPO 시장을 겨냥하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현재 한국거래소 예비심사 승인을 획득하며 코스닥 입성을 목전에 둔 카나프테라퓨틱스, 인벤테라, 아이엠바이오로직스가 포진해 있다. 유빅스테라퓨틱스와 넥스트젠바이오사이언스도 예비심사 청구를 마치고 시장의 평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관전 포인트는 더파마뉴스의 ‘2025 글로벌 벤처투자’에서 강조했듯, 단순한 비전이 아니라 글로벌 기술이전 성과와 임상 데이터로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과연 이들이 2025년의 훈풍을 2026년의 상승 흐름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 더파마뉴스는 상장을 앞둔 주요 유망 후보들을 차례로 심층 분석한다.
예비 심사 2개월 만에 통과, ‘초고속 상장’ 궤도 오른 카나프테라퓨틱스

2026년 국내 바이오텍 IPO 시장의 포문을 열 ‘첫 주자’로 카나프테라퓨틱스가 낙점됐다. 카나프테라퓨틱스는 2025년 8월 기술특례 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에서 두 전문 평가기관으로부터 모두 A등급을 획득하며 탄탄한 기초 체력을 입증했다. 이어 10월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한 뒤, 두 달 만에 승인을 얻어내며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초고속 상장’ 트랙에 올라섰다.
물론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금융감독원이 기술이전 매출 산정 방식과 영업이익 추정 근거에 대한 보완을 요구하면서 DART 공시 기준 증권신고서 정정 절차를 거치게 된 것이다. 이에 카나프테라퓨틱스는 실적 추정치를 보수적으로 하향 조정하는 한편, 주당 평가가액 산정에 적용되는 할인율을 낮추는 등 밸류에이션 재정비를 단행했다. 그 결과 회사는 기존 희망 공모가 밴드(16,000원~20,000원)를 유지했다.
카나프테라퓨틱스는 2월 4일부터 10일까지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해 최종 공모가를 확정한 뒤, 2월 19일부터 일반 청약에 돌입한다. 한국투자증권이 주관사를 맡았으며, 3월 초 코스닥 상장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카나프테라퓨틱스가 시장의 기대치를 충족하며 2026년 바이오 IPO 시장의 흥행 신호탄을 쏘아 올릴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기술 분석] 항암제 내성의 해법, ‘종양미세환경’에서 찾는다.

2019년 2월 설립된 카나프테라퓨틱스는 인간 유전체 분석 기반의 약물 발굴 플랫폼을 바탕으로 면역항암제와 ADC(항체약물접합체)를 개발하는 바이오텍이다. 카나프의 핵심 전략은 암의 내성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종양 미세환경(Tumor Microenvironment, TME)’을 정조준하는 데 있다. 면역세포 침투가 어려워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는 ‘차가운 종양(Cold Tumor)’을 면역세포가 활성화된 ‘뜨거운 종양(Hot Tumor)’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목표다.
카나프는 특정 항체와 사이토카인을 정교하게 결합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종양미세환경(TME) 내에서 면역세포 활성화를 유도해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기전을 구현한다. 특히 강력한 항암 활성을 지녔음에도 전신 독성 부작용으로 개발이 까다로웠던 사이토카인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표적 중심의 국소 활성화’ 전략을 채택했다.
약물이 혈액을 타고 체내를 순환하는 동안에는 비활성 상태를 유지해 정상 조직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목표한 종양미세환경에 축적된 이후에만 항암 활성을 발휘하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약물 작용 농도 범위(Therapeutic Window)를 확장함으로써, 기존 면역관문억제제에서 관찰되는 내성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2022년 동아에스티에 기술이전된 ‘KNP-101’이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대표 파이프라인이다.
‘KNP-101’, 이중항체로 IL-12의 독성은 잡고 효능은 살리다
KNP-101은 anti-FAP/IL-12mut 이중항체 면역항암제로, 강력한 효능에도 전신 독성 문제로 번번이 개발에 실패했던 IL-12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설계됐다.
핵심은 ‘표적 국소화’다. IL-12는 선천면역과 적응면역을 동시에 깨우는 강력한 사이토카인이지만, 전신 투여 시 과도한 면역 활성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하는 ‘양날의 검’이었다. KNP-101은 종양미세환경(TME) 내 섬유아세포에 선택적으로 과발현되는 FAP(Fibroblast Activation Protein)을 약물 전달의 ‘앵커(Anchor)’로 활용한다. 즉, 약물을 암 조직까지 안전하게 전달한 뒤, 종양 내부에서만 IL-12 활성이 발현되도록 설계해 전신 독성은 최소화하고 종양 내 면역 활성 효과는 극대화했다. 비임상 모델에서도 이러한 전략이 적중하며 우수한 항종양 효능과 안전성이 확인됐다.
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비소세포폐암(NSCLC)에서 ‘면역관문억제제 치료 실패 후 2차 치료’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 영역은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이 3상 임상에서 고배를 마시며, 여전히 뚜렷한 대안이 없는 대규모 미충족 의료수요(Unmet Needs)로 꼽힌다. KNP-101은 이 난공불락의 시장을 공략할 차세대 주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2022년 12월 동아에스티에 기술이전돼 현재 공동개발이 진행 중이다.
7,748억이 말해주는 견고한 파이프라인

카나프테라퓨틱스의 성과는 ‘KNP-101’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회사가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 5개 파트너사와 5건의 조기 기술이전 및 공동개발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를 통해 달성한 누적 선급금은 159억원, 총 계약금액은 7,748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폭넓은 포트폴리오의 중심을 잡고 있는 핵심 자산이 바로 오스코텍에 기술이전된 ‘KNP-502’다. KNP-101이 ‘TMEkine’을 대표한다면, KNP-502는 종양미세환경을 정밀 타격하는 합성신약 기반의 면역항암제로서 카나프의 또 다른 기술적 축을 담당하고 있다. EP2와 EP4 수용체를 동시에 차단하는 이 이중 저해제는 암세포의 면역 회피 기전을 무력화하며, 카나프가 추구하는 ‘종양미세환경 조절’ 전략의 정수를 보여준다.
암세포의 부활을 막는 ‘KNP-502’
KNP-502는 암세포가 항암 치료에 저항해 살아남고 전이되는 핵심 경로를 차단하는 항내성 저해제이다. 종양미세환경 내에서 과발현되는 활성 지질인 프로스타글란딘 E2(PGE₂)는 면역세포의 활성을 억제하고 암 줄기세포의 재증식을 유도하는데, KNP-502는 PGE₂의 주된 수용체인 EP2와 EP4를 동시에 차단함으로써 단일 저해제의 한계로 지적돼온 보상기전 작동을 원천적으로 막도록 설계되었다. 현재 KNP-502는 임상 1상 단계에서 비소세포폐암, 대장암 등의 고형암을 적응증으로 안전성과 초기 개발 가능성을 검증하고 있다.
KNP-502의 가장 큰 차별점은 항암제 내성 극복을 위한 ‘항내성 저해제(Anti-Resistance Agent)’ 전략에 있다. 일반적으로 화학항암제나 방사선 치료로 암세포가 사멸할 때, 일부 생존한 암세포는 ‘Phoenix Rising’이라 불리는 기전을 통해 다량의 PGE₂를 분비하며 재생 신호를 보낸다. KNP-502는 이 Phoenix Rising 신호를 차단해 재발과 내성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고, 종양미세환경을 보다 면역 친화적으로 전환함으로써 항암 치료 효과의 지속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쟁사의 실패와 성공에서 찾은 해답: ‘화학항암제와의 병용투여’
글로벌 경쟁 상황을 보면 KNP-502가 채택한 임상 전략의 우위가 더 분명해진다. 동일 기전 약물인 템페스트 테라퓨틱스(Tempest Therapeutics)의 ‘TPST-1495’는 면역관문억제제(펨브롤리주맙)와의 병용 임상을 진행했으나, 객관적 반응률(ORR) 4.5%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사실상 항암 적응증 개발이 중단됐다.
이는 병용 약물 선정의 패착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다수 고형암은 면역세포 침투가 적은 ‘차가운 종양(Cold Tumor)’인 경우가 많아 면역관문억제제 병용만으로는 초기 반응이 제한적일 수 있다. EP2/EP4 저해제는 치료 과정에서 유발되는 내성 기전을 타깃하지만, 병용 약물의 초기 항종양 활성 자체가 충분하지 않으면 기전적 효능을 확인할 전제 조건이 약해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에 카나프테라퓨틱스와 파트너사 오스코텍은 면역항암제 대신 ‘화학항암제’와의 병용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화학항암제는 투여 직후 강한 세포독성으로 암세포를 사멸시키고,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암세포가 내성 기전을 가동할 때 KNP-502가 개입해 이를 차단하는 방식이 기전적으로 더 적합하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전략의 유효성은 경쟁사인 오노약품공업의 임상 결과에서도 시사점을 준다. 오노약품공업이 개발 중인 EP4 단독 저해제(ONO-4578)는 위암 1차 치료를 대상으로 한 임상 2상에서 주요 평가 변수를 충족하며 화학항암제 병용 가능성을 보여줬다. KNP-502는 ONO-4578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EP2도 함께 억제해, 단일 저해제 대비 더 강력하고 포괄적인 항종양 효과를 기대하게 한다.
현재 ‘KNP-502’는 2025년 5월 미국 FDA로부터 임상 1상 IND 승인을 받았으며, 같은 해 12월 국내 임상 1상 첫 환자 투여를 시작으로 임상 궤도에 올랐다. 오스코텍이 레이저티닙(렉라자)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빅파마로의 재-기술이전을 추진하고 있어, 향후 카나프테라퓨틱스의 수익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핵심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다각화된 포트폴리오와 영리한 생존 전략, 이제는 ‘증명’의 시간
카나프테라퓨틱스의 무기는 KNP-502와 KNP-101에 그치지 않는다. 후속 파이프라인인 ‘KNP-504’는 기존 치료제가 커버하지 못하는 광범위한 RAS 변이 암을 표적하는 SOS1 저해제로, 병용 요법에서 강력한 잠재력을 보이며 임상 진입을 준비 중이다. 또한 ADC 분야로 확장된 ‘KNP-701’은 cMET과 EGFR을 동시에 타깃해 비소세포폐암의 내성 문제를 겨냥하고, 치료 안전역을 넓힌 이중항체 ADC로 기대를 모은다. 여기에 롯데바이오로직스와 공동 연구 중인 ADC 플랫폼 ‘SoluFlex Link’까지 더해지며 회사의 기술적 저변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카나프테라퓨틱스가 추구하는 사업 모델은 개발 초기 단계에서 국내 제약사에 1차 기술이전을 단행해 막대한 임상 비용 부담과 실패 리스크를 헤지하고, 이후 파트너사와의 공동 개발을 통해 글로벌 빅파마로의 2차 기술이전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확보한 계약금과 마일스톤 수익을 다시 R&D에 재투자하는 리스크 분산형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목표다.
이제 남은 과제는 시장 앞에서의 증명이다. 탄탄한 기술력과 영리한 사업 모델이 화려한 청사진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글로벌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숫자로 입증해야 한다.
Editor 남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