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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파마 | THE PHARMA

[글로벌 의약품 가격 Top 10 ①] 60억 원 시대 연 유전자 치료제… ‘비싸도 팔리는 약’의 조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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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출시된 노바티스(Novartis)의 척수성 근위축증(SMA) 치료제 졸겐스마(Zolgensma)는 세계 최초의 원샷(one-shot) 유전자 치료제로 주목받았다. 출시가는 210만 달러, 한화로 20억 원을 훌쩍 넘기며 당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의약품’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후 유전자 치료제가 잇따라 승인되며 이 기록은 여러 차례 경신됐고, 2025년 11월 노바티스의 이트비스마(Itvisma)가 새롭게 승인되면서 졸겐스마는 결국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더파마뉴스가 2026년 1월 기준으로 집계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의약품 Top 10’에 따르면, 7위에 오른 조직 이식 치료제 레티믹(Rethymic)을 제외한 나머지 9개 의약품은 모두 원샷 유전자 치료제다. 현재 최고가 치료제는 이염성 백질이영양증(MLD) 적응증의 렌멜디(Lenmeldy)로, 도매가 기준 425만 달러(한화 약 60억 원)에 책정됐다. 의약품 가격이 400만 달러를 넘어선 시대를 연 상징적인 사례다.

그러나 모든 고가 의약품이 가격만큼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어떤 치료제는 블록버스터 반열에 오르는 반면, 어떤 치료제는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 더파마뉴스는 주요 고가 의약품 사례를 중심으로, 유전자 치료제의 초고가 약가 이면에 숨은 가격 논리와 상업적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인을 짚어봤다.

렌멜디, 왜 400만 달러를 넘을 수 있었나

렌멜디는 영국 바이오텍 오차드 테라퓨틱스(Orchard Therapeutics)가 개발한 유전자 치료제로, 2020년 12월 유럽에서 상품명 리브멜디(Libmeldy)로 먼저 승인됐다. 이후 2024년 3월 미국 FDA 허가를 받았으며, 2024년 1월 교와기린(Kyowa KIRIN)이 오차드를 인수하면서 현재는 교와기린의 핵심 희귀질환 파이프라인으로 편입됐다.

렌멜디의 적응증은 소아 이염성 백질이영양증(MLD)이다. MLD는 아릴설파타제 A(ARSA) 효소 결핍으로 설파타이드가 체내에 축적되며 발생하는 유전 질환으로, 신경계 탈수초를 유발해 운동 기능과 인지 기능을 빠르게 파괴한다. 증상이 진행되면 전신 마비와 혼수 상태에 이르며, 대부분 증상 발현 후 3~4년 내 사망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기존에는 근본적인 치료 수단이 사실상 없었다.

렌멜디는 환자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활용하는 자가 유래(Autologous) 유전자 치료제다. 조혈모세포를 채취한 뒤, 정상 ARSA 유전자를 담은 렌티바이러스 벡터를 도입해 다시 환자에게 주입하는 방식이다. 질병을 단순히 늦추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직접 교정한다는 점에서 치료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상 데이터 역시 약가를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다. 37명의 초기 발병 소아 MLD 환자를 대상으로 한 1/2상·2/3상 통합 분석에서, 렌멜디는 사망률과 질병 진행을 현저히 억제했다. 증상 전 조기 연소형 환자군에서는 5세 시점에 ‘생존’과 ‘중증 운동기능 손실 없음’을 모두 충족한 비율이 치료군 100%, 미치료군 0%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6세 생존율 역시 치료군은 100%, 미치료군은 58%에 그쳤다. 운동 기능과 인지 기능 지표에서도 일관된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이 같은 임상 성과를 고려하면 렌멜디의 초고가 약가는 1) 자연 치사율이 거의 100%에 가까운 질환 특성, 2) 대체 치료제의 부재, 그리고 3) 압도적인 임상 효능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여기에 MLD가 미국 기준 약 4만 명당 1명, 전 세계적으로 10만 명당 1명 수준으로 발생하는 초희귀 질환이라는 점도 가격 산정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 매출 추이를 보면, 2020년 말 출시 이후 2022년 매출은 1,880만 달러(약 243억 원), 2023년은 1,670만 달러(약 220억 원)로 비교적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교와기린에 인수된 2024년에는 연 매출 33억 엔(약 297억 원)을 기록했고, 2025년에는 3분기 누적 기준으로 이미 44억 엔(약 423억 원)을 달성하며 성장세가 뚜렷해졌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GlobalData)는 렌멜디의 연 매출이 2029년 1억 1,400만 달러(약 1,670억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5년 이후 매출 증가의 핵심 배경은 조기 진단 환경의 변화다. 2024년 하반기 미국 연방 정부가 MLD를 신생아 선별검사 권장 패널(RUSP)에 포함시키면서, 표준 진단 체계가 마련됐다. MLD는 발병 시기에 따라 후기 영아형(2.5세 이내), 조기 연소형(2.5세 ~ 6세), 후기 연소형(6세 ~ 12세), 성인형으로 나뉘는데, 렌멜디는 이 중 12세 이하의 증상 전 또는 초기 단계 환자에게만 효과를 보인다. 이미 탈수초가 상당히 진행된 환자에게는 치료 효과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렌멜디의 시장 확대는 치료 효과보다 ‘얼마나 빨리 환자를 찾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전체 MLD 환자 중 12세 이하의 후기 영아형과 연소형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신생아 선별검사가 정착될 경우 상당수 환자를 치료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 실제로 교와기린은 2024년에는 이미 질병이 진행된 환자가 많아 환자 발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2025년에는 뉴욕 등 주요 주들이 MLD를 의무 검사 항목으로 채택하면서 접근 가능한 환자 풀이 빠르게 확대됐다.

렌멜디 사례는 희귀의약품의 성공이 단순히 약효나 가격에만 달려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질병 인식, 진단 체계, 제도적 환경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축하느냐가 상업적 성패를 좌우한다. 미국에서 매년 약 40명 내외로 추산되는 소아 MLD 환자 가운데, 교와기린이 실제 치료로 연결할 수 있는 환자 수가 앞으로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헴제닉스, 독점의 수혜자가 될 수 있을까

햄제닉스는 CSL 베링(CSL Behring)의 유전자 치료제로, 혈액응고 제9인자(IX 인자) 결핍 성인 B형 혈우병을 적응증으로 2022년 10월 FDA 승인을 받았다. 단일 투여(one-shot)를 통해 평생 지속되는 출혈 위험 관리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헴제닉스의 적응증은 성인 B형 혈우병이다. B형 혈우병은 혈액응고 제9인자(Factor IX, FIX)의 선천적 결핍으로 발생하는 유전 질환으로, 경미한 외상이나 자발적인 출혈이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관절 출혈이 누적되면 관절 변형과 만성 통증으로 이어지고, 심한 경우 생명을 위협하는 출혈 위험을 평생 관리해야 한다. 기존 치료는 제9인자 응고인자를 정기적으로 정맥 투여해 혈중 혈액응고 제9인자 수치를 유지하는 방식이었으며, 이는 환자에게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큰 부담으로 이어졌다.

이에 CSL 베링은 유전자 치료제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기존 치료가 외부에서 응고인자를 반복적으로 보충하는 ‘대체 요법’이었다면, 헴제닉스는 체내 생산 시스템 자체를 복원하는 접근법이다. 헴제닉스는 체내에서 혈액응고 제9인자를 스스로 생성하도록 유도한다.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 벡터를 이용해 기능적인 FIX 유전자를 간세포에 전달하고, 이를 통해 간에서 지속적으로 FIX 단백질이 발현되도록 설계되어 근본적인 치료를 노린다. 한 번의 정맥 주사만으로 장기간 응고인자 활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FDA 승인의 핵심 근거는 HOPE-B 임상 결과다. 임상에서 햄제닉스 투여 후 6개월 및 24개월 시점에 평균 약 36.7% 수준의 제9인자 활성이 유지되었으며, 투여 후 7~18개월 구간의 연간 출혈률은 1.51로 투여 전 대비 64% 감소했다. 특히 전체 치료 환자의 94%(51명/54명)가 기존 예방요법을 중단할 수 있었던 점은 임상적 의미가 크다.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승인된 햄제닉스는 2024 회계연도 매출 3,200만 달러(약 427억 원), 2025 회계연도에는 9,200만 달러(약 1,281억 원)를 기록하며 블록버스터 타이틀을 목전에 두고 있다.

원샷 유전자 치료제가 시장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 반드시 증명해야 하는 요소는 ‘효과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다. 햄제닉스는 2025년 12월 발표된 HOPE-B 5년 장기 추적 결과를 통해 이 질문에 답을 제시했다. 기존의 혈액응고 제9인자 주입 요법을 받는 환자의 연간 평균 출혈률은 4.16회 수준인데, 헴제닉스 치료 4년차에 이들의 출혈률은 0.40회로 약 90% 감소했다. 혈액응고 제9인자 활성도 역시 기존 중기 추적 데이터와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됐다. 장기 효능에 대한 불확실성은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치료 결정을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인 만큼, 이번 결과는 향후 처방 확대와 매출 성장에 직접적인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B형 혈우병은 평생에 걸쳐 제9인자 대체 요법을 정기적으로 정맥 투여해야 하는 질환으로, 환자에게 시간적·심리적 부담이 크다. 비용 부담 역시 만만치 않다. 미국 기준 기존 유지요법의 연간 평균 비용은 약 60만 달러(한화 약 8.8억 원)에 달한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약 5.8년간의 기존 유지요법 비용이 햄제닉스의 단회 투여 가격과 맞먹는다. 이 때문에 햄제닉스는 임상적 유효성뿐 아니라 비용효과성 측면에서도 설득력을 갖춘 치료제로 평가된다. 결국 햄제닉스의 초고가 약가는 값비싼 기존 유지요법 구조, 의미 있는 임상 효능, 그리고 장기 지속 효과에 대한 신뢰가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한편 2024년 4월 FDA 승인을 받았던 화이자의 베크베즈(BEQVEZ)는 단회 투여 방식의 B형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였지만, 출시 1년도 채 되지 않은 2025년 2월 시판 중단이 결정됐다. 회사 측은 환자와 의료진의 수요가 제한적이었고, 시장성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철수 배경으로 밝혔다.

이 결정으로 현재 B형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 시장에는 사실상 헴제닉스만이 남게 됐다. 표면적으로 보면 경쟁자가 사라진 만큼 헴제닉스에는 호재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빅파마인 화이자가 유전자 치료제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했다는 사실은, B형 혈우병이라는 적응증 자체의 시장 한계를 드러내는 신호일 수도 있다. 치료 효과와 과학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환자 규모·치료 타이밍·보험 및 급여 구조까지 고려했을 때 상업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시장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베크베즈의 철수는 헴제닉스에게 기회이자 동시에 질문을 던진다. 경쟁자가 사라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될 것인지, 아니면 빅파마조차 등을 돌린 좁은 시장에 홀로 남게 된 것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헴제닉스의 향후 처방 확대 속도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해줄 것이다.

Editor 이태계, 서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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